미술사학자가 쓴 신간 '조선 회화의 새로운 마스터피스'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8세기 중반 개성 일대를 그린 화첩 '송도기행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정보에 따르면 이 작품은 18세기 조선 화단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대부 화가 표암 강세황(1713∼1791)이 만든 화첩이다. 그가 개성 유수였던 친구 오수채(1692∼1759)의 초청을 받아 개성 일대를 여행한 뒤 16점의 그림과 3건의 글로 구성했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며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이 교수는 '월간 민화' 2022년 8월호와 9월호에서 이 화첩의 작가를 명시한 기록이 없는 등 강세황의 작품이라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강세황이 그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강세황이 썼다는 후기에는 글쓴이의 도장이 찍혀 있어야 할 자리의 종이가 잘려져 나갔다"며 "이 부분을 오려내는 바람에 강세황 작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교수의 주장을 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다만 사실일 경우 미술 교과서 상당수가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 미술사학계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온 이 교수의 신간 '조선 회화의 새로운 마스터피스'(마로니에북스)는 저자가 2008년 이후 발표해온 연구 가운데 기존 통설을 보완하거나 뒤집는 10건의 연구를 묶은 책이다. '송도기행첩'을 강세황이 그리지 않았다는 주장처럼 조선 회화사의 시기 설정과 작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들이다.
저자는 김홍도의 출생지가 경기도 안산으로 추정되는 것에도 의문을 품는다.
1784년 6월 김홍도는 안동 임청각 주인 이의수에게 '수금·초목·충어화첩'을 그려줬다. 복사꽃과 죽순, 참외, 석류, 갈대꽃, 게 등 장수와 화복, 다산, 효행, 과거 급제, 관료 출세 등 세속적 길상(吉祥)을 주제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10년 뒤인 1794년 송관자 권정교(1738∼1799)는 화첩에 발문을 남기며 김홍도를 '낙성 하량인'이라 소개했다. 한양의 청계천 수표교 동쪽 옆다리인 '하량교 근처 사람'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2013년에 처음 공개된 이 화첩은 김홍도의 탄생지를 경기도 안산으로 추정했던 것을 재고하게 한다"며 "김홍도의 초기 아호 '서호'도 한강의 마포 유명 지역에서 따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선 중기에 그려진 소 그림을 중국 화보에 의존한 것으로 치부하던 시각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조선 초 15세기 명나라는 폐쇄 정책으로 소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자 조선은 덩치가 크고 힘센 오키나와 수우(水牛)를 가져왔다. 이어 조선 소와 교배해 추위를 견디도록 육종했다.
저자는 이런 기록을 통해 16∼17세기에 그려진 소 그림이 중국의 소를 그린 것이 아니라 조선의 소를 실제로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17세기 '수락옹'이라는 별칭의 화가 김집이 남긴 소 그림 '수우도'를 근거로 저자는 "당시 중국의 소 그림들을 뒤져봐도 수락옹이 그린 무소의 양식은 여간 잘 보이지 않는다"며 "수락옹류의 소 그림은 조선 전기 육종에 성공한 무소를 그린 17세기 회화의 사실적 전형"이라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겸재 정선의 1742년 작 '연강임술첩' 신화첩본과 강세황의 '두운지정화첩', 신익성의 '백운루도'와 '신익성 초상', 김홍도의 '풍암당 진영'과 승려 초상 등 21세기에 새로 발견된 작품들을 통해 숨겨진 이야기나 새로운 해석을 풀어놓는다. 기존 조선 회화사를 재점검하게 만드는 연구서다.
288쪽.
laecorp@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