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국내 중견 선사인 장금상선이 최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선대 확충에 사활을 걸며 글로벌 VLCC 시장에서 ‘큰 손’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선박왕’으로 불리는 정태순 회장이 이끄는 장금상선은 75척의 컨테이너 선대와 건화물선(벌크선), 탱커(원유운반선) 등을 포함, 200척에 달하는 선대를 운용 중이다. 장금상선은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에 8300억원 규모의 1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대형 컨테이너선 4척을 신조 발주하며 컨테이너 선대 확장을 강화하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하지만 장금상선은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된 VLCC 중고선 40여척 중 상당수의 매입 과정에 관여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 노르웨이 프론트라인·벨기에 CMB.테크 매각 발표
11일 글로벌 해운 브로커와 업계에 따르면 장금상선은 지난해 연말 이후 최근까지 재화중량톤수(DWT) 기준 30만톤 안팎의 중고 VLCC 35척을 매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톤수 기준 1060만톤 규모로 중고선 매입 거래 가격은 총 29억8700만달러(약 4조2600억원)에 달한다.
VLCC 리세일(중고선 구매) 거래 대상도 노르웨이의 해운왕 욘 프레드릭센 회장 계열의 프론트라인을 비롯해 벨기에 CMB.테크, 미국 인터내셔널시웨이즈 등 글로벌 굴지의 해운사로 다양하다.
장금상선은 프론트라인으로부터 선령 10년 안팎의 VLCC 8척을 리세일 방식으로 들여온다. 프론트라인은 지난달 초 거래 대상을 공개하지 않고 이들 선박을 총 8억3100만달러(약 1조1800억원)에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VLCC 8척은 1분기 안에 인수자 측에 인도될 예정이다.
지난 2024년 사명을 유로나브에서 ‘CMB.테크’로 변경한 벨기에 선사도 장금상선에 중고 VLCC 6척을 팔았다. 6척 중 일본에서 건조된 1척을 제외한 나머지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서 건조한 선령 9~18년 된 선박으로 알려졌다. CMB.테크도 지난달 초 매수자와 가격을 밝히지 않은 채 VLCC 리세일 사실을 밝혔다. 시장에선 이번 거래의 매수자 역시 장금상선일 확률이 높으며 총 금액은 5억2000만달러(약 7400억원) 선으로 보고 있다.
◆ 중고 VLCC 선가 흐름 ‘좌지우지’
장금상선은 인터내셔널시웨이즈 소속 VLCC 7척을 매입한 당사자로 지목됐다. 7척의 리세일 가격은 6억4700만달러(약 9200억원)다. 이 외에도 장금상선은 영국 선주사 조디악에서 3척, 그리스 선사 카디프 델타탱커스, 캐피탈십매니지먼트로부터 각각 2척씩 VLCC를 사들였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이처럼 단기간에 집중 매입에 나선 장금상선의 행보는 중고 VLCC 선가 흐름까지 흔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금상선이 선령 10~15년 내외의 중고 VLCC를 중심으로 매입에 나서면서 해당 선령 선박의 중고선가가 단기간에 급상승하는 흐름을 주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주요 선종별 선가 평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선령 15년의 VLCC 리세일 선가는 최근 20% 급등한 7500만달러, 선령 10년의 VLCC도 14% 오른 1억500만달러 수준으로 높게 형성됐다.
◆ 장기운송계약 연장·신규 용선...두 자릿수 선대 확보
선박 가치·거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 서비스 베슬즈밸류(Vessels Value)도 클락슨과 유사한 분석을 내놨다. 올들어 장금상선 계열에서 집중 매입한 선령 10~15년 VLCC의 가치 상승 폭이 전 선형 중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금상선이 VLCC 시장에서 사실상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키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장금상선은 리세일 거래뿐 아니라 글로벌 오일 기업 등 VLCC의 주요 화주들과 장기 거래 관계를 유지·확대하며 해당 선종 운용 기반도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 기존 장기운송계약의 연장과 신규 용선 계약 체결을 통해 이미 두 자릿수 규모의 VLCC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앞서 소개한 유럽, 미국 선사로부터 중고선 매입 및 인도 완료, 용선 계약까지 마무리될 경우 장금상선의 VLCC 선대 운용 규모가 최대 100척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현재 70여척 수준인 컨테이너선 선대와 견줬을 때 규모 면에서 역전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다.
VLCC(유조선) 도입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늘리는 장금상선의 이같은 행보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아시아 역내(Intra-Asian) 항로를 중심으로 정기선(컨테이너선) 운임 하락과 선박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정기선 운송 부문의 수익성 둔화가 불가피해졌다는 회사의 판단이 이번 유조선 리세일 도입에 결정적인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VLCC는 단위당 운송비가 낮고 장기 운송계약·용선 비중이 높아 단기 운임 변동에 따른 실적 타격이 컨테이너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물론 VLCC를 포함한 탱커선 시장도 올해 선박 공급 과잉을 피할 수 없지만 수요를 웃도는 공급량이 컨테이너선에 비해 현저히 낮고 노후선 해체 등을 통해 공급 과잉도 해소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해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금상선이 컨테이너선 선대 일부를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대신 경기 변동성에 대한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탱커 부문을 핵심 축으로 키우며 선대 구성을 재편하는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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