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한국은행이 청년층이 대를 이어 비수도권에 머물수록 계층 상승이 더 어려워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청년은 부모가 소득 하위권이면 자녀 역시 하위권에 머무는 비율이 8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으로 작성한 ‘지역 간 인구 이동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에 따르면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은 소득보다 부동산 등 자산에서 더 강하게 관찰됐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세대를 거치며 확대되는 흐름이 확인됐다.
한국노동패널(KLIPS)을 분석한 결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 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추정됐다. 부모의 소득 순위가 10계단 높아질 때 자녀의 소득 순위도 평균 2.5계단 오르는 셈이다.
수도권 집값 급등으로 소득이 아닌 자산 기준으로 보면 대물림 현상은 더 뚜렷했다. 자산 RRS는 0.38로 소득 RRS보다 높았다. 세대별 자산 RRS는 1970년대생 0.28, 1980년대생 0.42로 집계됐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리고 자산 격차가 클수록 부모 세대 경제력이 자녀 세대로 이전되는 강도가 더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보고서는 지역 이동 여부가 세대 간 대물림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부모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 백분위는 부모보다 6.5%포인트 상승했지만 고향에 남은 비이주 자녀는 오히려 2.6%포인트 하락했다. 이주 자녀의 소득·자산 RRS(0.13, 0.26)는 비이주 자녀(0.33, 0.46)보다 크게 낮았다.
출생 지역 역시 대물림의 주요 변수였다. 수도권 출생 자녀는 수도권 내 이동만으로도 계층 상향 이동이 나타난 반면 비수도권 출생 자녀는 수도권으로 이동할 때 경제력 개선 폭이 더 크게 확대됐다.
이로 인해 최근 비수도권에서는 가난의 대물림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에서 태어난 1971~1985년생 가운데 부모 소득이 하위 50%일 때 자녀 세대에서도 하위 50%에 머문 비율은 50%대 후반이었지만 1986~1990년생에서는 이 비율이 80%를 넘어섰다. 하위 50%에서 상위 25%로 도약한 비율은 같은 기간 13%에서 4%로 급감했다.
한은은 비수도권 출생 자녀에게는 수도권으로 이주하려는 유인이, 수도권 출생 자녀에게는 수도권에 잔류하려는 유인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청년층의 일방적인 수도권 집중은 국가 전체적으로 지역 간 양극화 심화, 사회 통합 저해, 초저출산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민수 한국은행 지역경제조사팀장은 “비수도권의 산업 기반과 일자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거점도시에 대한 집중 투자가 긴요하다”며 “행정구역 통합 등도 거점도시 위상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은행이 제안한 ‘지역별 비례선발제’ 필요성도 다시 언급됐다. 정 팀장은 “비수도권 저소득층 학생이 서울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며 “비수도권 거점 대학의 교육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과감한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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