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김울프의 K-지오그래피…수영만 요트장, 바람을 쫓던 기억-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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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김울프의 K-지오그래피…수영만 요트장, 바람을 쫓던 기억-①

연합뉴스 2026-02-11 10:09: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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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수영만 요트 풍경 수영만 요트 풍경

[김울프 작가 제공]

쫓기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은 역설적으로 그 마음을 끝까지 쫓아가 보는 일이다. 무엇인가에 온전히 몰두해 원하는 곳을 향해 나아갈 때, 정신은 비로소 잠시 쉴 자리를 찾는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붐비는 도시를 떠나 대자연을 찾는다.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얼굴을 스치는 바닷바람, 살갗을 뜨겁게 누르는 햇살 속에는 분명한 움직임과 생명력이 담겨 있다. 한 번은 멈춰 서서 이런 에너지를 충전해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 위해,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지 모른다.

◇ 바람을 쫓는 배, 요트의 이름과 역사

'요트'(Yacht)라는 말은 네덜란드어 '야흐트'(Jacht)에서 온다. 이 단어는 '사냥하다, 쫓다'는 뜻의 동사 '야헌'(Jagen)에서 파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바다를 건너기 위한 도구로 배를 만들었다. 초기의 돛단배는 바람을 등지고, 바람이 밀어주는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삼각돛(sail)의 발명은 항해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돛의 각도를 조정해 바람을 비스듬히 받아들이면서, 바람을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풍 항해'가 가능해진 것이다. 강한 바람을 이용해 곧장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비켜 맞으며 지그재그로 목적지에 접근하는 기술이었다.

이러한 돛과 선체 기술의 축적 위에서 오늘날의 근대적 요트가 태어났다. 1660년 영국 왕정복고 이후, 네덜란드가 찰스 2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선물한 '메리'(Mary)호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배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야흐트'(Jacht)라 불리던 민첩한 소형 선박으로, 왕실의 유람과 연안을 빠르게 오가는 용도로 쓰였다. 이 선박이 영국에 들어오면서 'Yacht'라는 말이 영어권에 자리 잡았고, 점차 귀족의 유흥용 선박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요트는 오랜 시간 해상 무역과 군사, 탐험의 주변에서 기술을 공유하며 발전했다. 증기기관과 디젤 엔진이 교통의 주역이 되기 전, 바람을 이용한 항해와 해상 무역은 대륙과 대륙, 문화와 문화를 잇는 유일한 소통 수단에 가까웠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세일링(sailing) 요트'는 즐길 거리이자 스포츠가 됐지만, 원래 이 기술은 인류가 세계를 확장하는 데 사용했던 가장 오래된 교통수단이자 생존 기술이었다.

세일링은 동시에 가장 오래된 국제 스포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근대 올림픽 초창기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여러 나라의 바다에서 같은 규칙과 같은 바람을 두고 경쟁하는 경기가 됐다.

"흰 천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이 말은 그저 낭만이 아니라, 실제로 인류의 지리와 역사를 바꿔 놓은 기술에 대한 요약이다.

◇ 바다를 읽는 경기장, 수영만 요트경기장의 탄생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오랫동안 최대 규모를 자랑해 온 요트경기장이다. 작은 레저 선박이라면 어촌의 방파제나 일반 항구에도 접안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척의 배를 동시에, 안전하게, 장기간 계류하려면 전용 정박 시설이 필요하다.

수영만 정박시설 수영만 정박시설

[김울프 작가 제공]

마리나는 일정한 수역에 여러 대의 선박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묶어 둘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어선은 내구성이 좋은 강철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상황에 따라 서로 옆으로 붙여 병렬 계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트는 이야기가 다르다. 돛대를 세운 마스트가 높이 솟아 있고, 선체는 유리섬유(FRP)나 카본 소재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충격에 상대적으로 약하다. 바람과 파도, 다른 선박의 통행 속에서 옆 배와 계속 부딪힌다면 파손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요트는 개별적인 폰툰(pontoon, 부유식 부잔교)과 정박용 줄을 갖춘 전용 선착장, 즉 마리나 시설이 필요하다.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요트경기장은 계류 공간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육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경사로(slipway), 선수와 심판이 사용할 계측실, 장비 보관창고, 수리 공간, 교육과 회의를 위한 건물까지 갖추어야 한다.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경기지만, 그 경기를 위한 인프라는 육지와 수면을 가로지르며 세밀하게 설계된다.

수영만 요트 풍경 수영만 요트 풍경

[김울프 작가 제공]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요트 경기를 위해 건설됐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라면 경기장도 서울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는 의문이 떠오르지만, 요트 경기는 본질적으로 '바다'라는 거대한 경기장이 있어야 하는 종목이다. 일정한 수심과 바람, 파랑 조건이 확보돼야 공정한 경기가 성립한다.

강이나 호수는 주변 지형과 인공 구조물의 영향을 크게 받아 바람 방향과 세기가 수시로 바뀌고, 유속도 일정하지 않다. 깊이 역시 제한적이라 대형 요트의 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반면 수심이 적당하고, 주변 육지 지형이 바람을 지나치게 왜곡하지 않으며, 다른 선박의 통행이 비교적 적은 바다는 요트 경기장으로서 중요한 자격을 갖춘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본관의 88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 부조 수영만 요트경기장 본관의 88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 부조

[김울프 작가 제공]

그래서 바다가 없는 내륙 도시에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 열릴 때, 요트 경기는 바다를 가진 다른 도시에서 분산 개최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요트 경기는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렸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연기 후 2021 개최)에서는 치바현 에노시마가 경기장이었다. 같은 이유로, 공항과 항만, 철도 인프라를 갖춘 당시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 '수영만 요트경기장'이 들어섰다.

수영만 요트 풍경 수영만 요트 풍경

[김울프 작가 제공]

나는 운 좋게도 이 경기장 근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 문을 나서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바다 쪽으로 향했다. 방과 후의 놀이터는 아파트 놀이터가 아니라, 요트가 떠 있는 수영만의 계류장과 잔잔한 물결이었다.

고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수영만의 바닷가와 그 위를 가로지르던 돛대들인 이유다. (2편에서 계속)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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