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조각투자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이 장외거래소 인가 절차에서 탈락 위기에 놓이면서 7년간 쌓아온 사업이 물거품이 될 처지다. 장철민 국회의원(대전 동구)은 10일 오후 4시30분 대정부질문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금융위원회에 신중한 결정을 촉구했다.
장 의원은 "루센트블록 관련 장외거래소 인가 절차를 금융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다"며 "여러 스타트업과 샌드박스를 거친 기업들이 이 건의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 성장을 이야기하면서도 회사가 문을 닫는 결정이 나오면 회사와 고객들이 너무 어려워진다"며 "이런 걱정을 잘 살펴달라"고 당부했다.
루센트블록은 자산을 쪼개 누구나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조각투자 플랫폼 운영 기업이다. 2018년 창업한 뒤 약 7년간 규제 샌드박스로 이 시장을 개척해온 대표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 한국형 샌드박스의 구조적 한계
루센트블록이 활용한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 기반 제품과 서비스를 일정 조건에서 시장에 내놓거나 안전성을 실증할 수 있게 규제를 면제·유예하는 제도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2016년 핀테크 육성을 위해 처음 도입한 뒤 싱가포르와 호주 등 전 세계로 확산했다.
하지만 해외와 한국의 샌드박스 운영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샌드박스 참여 사업자에게 처음부터 소규모 라이선스를 주되 사업 규모와 이용자 수에 제한을 둔다. 특히 영국 FCA는 실증 성과와 안정성이 충족되면 즉시 정식 라이선스로 전환해주는 연속 프로세스를 갖췄다.
반면 한국은 최대 4년의 실증 기간이 정해져 있고 기간이 끝나면 제도화 여부가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샌드박스가 실증 특례일 뿐 영구 면허나 법적 지위를 보장하지 않아 기업들이 투자 유치나 사업 확장에 필요한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런 구조적 한계 속에서 루센트블록은 7년여의 긴 여정을 걸어왔다.
◆ 2647일의 개척, 한순간 물거품 위기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가치를 위해 쌓아온 2647일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각투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규제 샌드박스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며 "시장성을 증명했고 제도화 단계에 이르렀지만 정작 실험을 가장 먼저 수행한 우리는 제도화 과정에서 배제될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샌드박스 승인을 받기까지만 약 2년 6개월이 걸렸다. 한 차례 신청이 거절된 뒤에도 루센트블록은 매일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정부청사 대기실에 머물며 담당자들을 직접 찾아가 개선점을 물었다. 이런 노력 끝에 2021년 4월 마침내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았다.
승인 뒤에도 루센트블록의 도전은 계속됐다. 수백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을 검증한 결과 현재 서비스 '소유'로 약 50만명의 고객과 11개 자산의 유동화를 달성했다. 부동산 거래 기준 7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투입된 자금은 350억원이 넘는다.
허 대표는 "장내거래소로서 샌드박스를 수행한 한국거래소에서는 단 한 건의 거래도 없었다"며 "시장은 검증됐고 제도화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이 검증되자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 등 대규모 공적·준공적 기관들이 경쟁 주체로 등장했고, 루센트블록은 오히려 제도권 진입에서 배제될 위기에 놓였다.
더욱 심각한 건 심사 과정에서 불공정한 처사가 있었다는 루센트블록의 주장이다. 허 대표는 "한 주체가 사업에 직접 진출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컨소시엄 참여를 논의하며 비밀유지계약(NDA)을 맺었다"며 "그 과정에서 사업 구조와 운영 관련 정보에 접근한 뒤 우리 파트너사에도 접근하며 독자 진출을 추진했고, 경쟁 주체로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 샌드박스의 역설...개척은 스타트업, 성과는 대기업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 상황을 두고 '샌드박스의 역설'이라고 비판한다. 맨땅에서 시장을 일군 혁신 기업들이 정작 제도화 단계에서는 거대 자본과 공공기관에 밀려 쫓겨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문제는 한 기업의 생존을 넘어 규제 샌드박스를 믿고 도전한 수많은 기업이 제도화 순간에 어떤 대우를 받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의 공식 발표가 두 차례나 미뤄지며 루센트블록의 불안감은 커졌다. 이에 루센트블록은 "특혜를 원하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가 감내한 시간과 위험,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시장 위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달라"고 밝혔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