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제11대 한국면세점협회장으로 취임한 조병준 협회장(호텔신라(008770) 부사장)은 이데일리와의 취임 첫 인터뷰에서 한국 면세산업이 처한 구조적 위기를 이같이 진단했다. 한국면세점협회가 공식 인터뷰를 통해 산업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매출 부진·객단가 하락·수익성 악화라는 삼중고가 장기화되면서 업계 전체가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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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면세산업이 처한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894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방한객수(1750만명)를 넘어선 수치다. 그러나 면세점 매출은 역행했다. 지난해 1~11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1조 414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 감소했다. 연 매출 25조원에 육박했던 2019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공항은 붐비지만 면세점 매출은 늘지 않는’ 디커플링(비동조화)이 구조화되고 있는 셈이다.
수익성도 악화일로다. 면세점 ‘빅4’(롯데·신라·신세계·현대)는 2024년 합산 28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대다수 면세점들은 수년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 사업은 이제 옛말이 됐다.
위기의 원인은 면세점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산업 구조적 문제다. 대내적으로는 고환율·고물가 장기화가 내국인의 실질 구매력을 압박하고 면세 채널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경기 둔화 속에 따이궁(중국 보따리상) 중심의 대량 판매 모델이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조 협회장은 “따이궁 구조는 한한령과 코로나19 시기에 형성된 한시적 판매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며 “여행의 지향점이 단순 쇼핑에서 체험과 한류 등 콘텐츠 소비로 이동하면서 면세점 중심의 소비 구조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는 저수익 사업권을 정리하고 매장을 축소하는 한편, 개별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매장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나서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실속을 높이는 방향으로 체질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조 협회장은 “면세점은 단순 판매 공간을 넘어 쇼핑·관광·문화 경험이 결합된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며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경쟁력 확보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조 협회장은 향후 제도 개선·정부 소통 등 협회 차원의 적극적 대응도 예고했다. 그는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서 협회의 구심점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단순 의견 수렴 창구에 머물러서는 산업의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올해 협회는 제도 개선과 규제 합리화를 위한 정부 소통 창구로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병준 협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관광객 수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면세점 매출과 수익성은 과거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이유는.
-대내적으로는 고환율·고물가 기조의 장기화가 내국인의 실질 구매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특히 고환율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로 백화점·일반 소매점 등 경쟁 채널로의 수요 이동이 이어지고 있고, 면세 채널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할인 판매가 수익성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실물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여력 감소와 함께 여행의 지향점이 단순 쇼핑에서 체험과 한류 등 콘텐츠 소비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맞물리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시내면세점과 입국장면세점을 대규모로 확대하는 정책 변화도 중요한 외생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따이궁 중심의 대량 판매 구조가 힘을 잃은 이유는 무엇이고, 산업 구조는 어떻게 달라졌나.
-따이궁 중심의 대량 판매 구조는 한한령과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객의 입국이 제한되던 시기에 형성된 한시적 판매 방식으로, 면세점의 본래 취지와 수익 구조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과도한 수수료 부담과 가격 왜곡 등 부작용이 누적된 가운데 방한 관광객의 여행 형태가 단체 중심에서 개별 관광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이 구조는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면세산업은 양적 판매에서 벗어나 개별 관광객의 국적별·소비 성향 및 구매 목적에 맞춘 상품 구성과 가격 전략, 체험·서비스 중심의 판매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소비자 접점 확대와 정상적인 마진 구조 회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면세점 수익성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가.
-공항·시내 매장의 고정비성 임차료와 인건비 부담이 크다. 특히 개별 관광객 중심으로 수요가 분산되면서 과거처럼 대량 판매로 고정비를 상쇄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고, 불확실한 수요 전망으로 중장기 투자 여력도 크게 제약받고 있다. 다만 업계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부담은 고환율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다. 면세점은 백화점이나 일반 소매점 대비 가격 우위가 전제돼야 고객 유입과 매출 확대가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대에서 장기간 형성되면서 이러한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면세점 이용 유인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한국 면세산업이 지속가능한 구조로 전환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면세점이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한국을 찾는 관광객에게 쇼핑·관광·문화 경험이 결합된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산업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K컬처와 다양한 체험 공간을 제공해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면세점을 ‘경험을 소비하고 다시 방문하고 싶은 장소’로 재정립해야 한다. 아울러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취향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출국 전 온라인 예약부터 면세품 인도, 입국 후 사후 관리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쇼핑 환경을 구축해 디지털 경쟁력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면세점의 본질적 경쟁력인 가격 메리트가 유지되지 않으면 이러한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백화점·일반 소매점 등 다른 유통 채널과 비교해 체감 가능한 가격 우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면세점협회의 역할이 과거와 같은 조정자·구심점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다만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다양해지고 시장 구조가 세분화될수록 협회가 조정자이자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본다. 동시에 협회가 단순한 의견 수렴 창구에 머물러서는 산업의 중장기적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올해 협회는 업계 공통의 구조적 과제를 중심으로 정책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제도 개선과 규제 합리화를 통해 정상적인 영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부와의 소통 창구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조병준 한국면세점협회장은…
△1972년생 △홍익대 산업공학 졸업 △항공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7년 삼성물산 입사 △호텔신라 면세 사업개발팀장·인천공항점장·CFO 역임 △호텔신라 TR부문장(부사장) △한국면세점협회 제11대 협회장(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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