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런 시절을 향한 그리움의 기억마저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슬레이트 위에 기와가 얹힌 이상한 모양의 지붕들이 좁은 틈을 두고 붙어 있다. 하지만 이 간격은 집과 집을 나누는 최소한의 구획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실례합니다" 한 마디에 누구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연약한 장벽이라서다. 그야말로 이웃 수저 개수까지 환한 송전탑 옆 언덕 아래 작은 마을에서 영화 〈안녕하세요〉는 막을 연다. 남의 집 밥상이며 TV 앞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어도, 술 취해서 돌아갈 집을 착각해도 상관 없는 이곳에선 숫제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영화 〈안녕하세요〉
영화 〈안녕하세요〉
온 마을에 TV가 한 대 밖에 없는 빤한 살림살이는 옆집 세간 하나가 바뀌어도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는 원인이다. 한 집이 세탁기를 사니 어른들은 그걸 무슨 돈으로 샀을지부터 생각한다.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며 웃는 낯으로 인사했던 이웃인데도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달 분의 마을 부녀회비가 회장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세탁기를 산 집이 돈을 가로챈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반면에 돈을 걷은 집을 의심하는 쪽도 있다. 각자 결백을 호소하는 두 집의 부인들은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 하지만 이들이 대면하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두 부인도 이웃도, 서로의 행동을 지켜보고 상상한 전말을 옮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 쉬듯이 하는 살가운 인사는 겉치레에 불과한 쓸데없는 행동이 아닐까? 〈안녕하세요〉는 TV를 사 달라고 떼를 쓰는 두 형제, 미노루와 이사무의 입을 빌려 의문을 던진다. 유일하게 TV를 보유한 집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 앞에선 여느 때처럼 인사하면서도 뒤에선 "집에서 서양 잠옷을 입고 있다"며 눈을 흘기는 이웃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스모 경기를 보러 부부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부모들은 영 탐탁지 않은 상황이다. 미노루와 이사무는 "TV를 보러 가지 못하게 할 거면 TV를 사 달라"고 하지만 부모는 "애들이 쓸데없이 말만 많다"며 묵살한다. 그러자 미노루는 "어른들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맞선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그렇구나' 따위의 말들이 쓸데없다며 동생과 함께 묵언 시위에 돌입한다.
영화 〈안녕하세요〉
이제 어른들의 변명을 들어볼 차례다. 부모들의 인사는 모종의 생존 전략이다. 에드워드 홀의 '고맥락 문화' 개념을 가져와 보자. 가벼운 인사의 목적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포함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밥 한 번 먹어야지"라는 말의 진짜 의도를 고민해야 하는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인사 뒤에 숨은 더 많은 의미를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안녕하세요〉에는 잡화를 팔려고 집집을 돌아다니는 방문 판매원이 나온다. 딱히 필요한 것이 없을 땐 귀찮은 존재다. 마을 조산부 할머니는 "잘 깎이는 연필"이라며 연필 깎는 시범을 보여주는 외판원 앞에서 "정말 잘 깎인다"고 물건을 칭찬하다가 갑자기 부엌으로 간다. 커다란 회칼을 가져다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연필을 깎기 시작하는 할머니를 본 외판원은 얼굴을 구긴 채 짐을 챙긴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묵언 시위 중인 미노루가 모두에게 인사마저 생략하자 마을 전체가 그 맥락을 추측하려는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영화 〈안녕하세요〉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맥락에 대한 지식이 쌓인 어른들은 반사적으로 인사를 내뱉는다. 눈치를 보지 않았을 때 경험한 불이익은 인사치레를 습관으로 만든다. 〈안녕하세요〉에는 그 사소한 인사가 아니면 자동차를 팔 수 없는 어른이 있고, 자기 마음을 솔직히 고백할 수 없는 어른이 있다. 아직 맥락을 보는 능력이 필요치 않은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들은 바보같고, 인사는 쓸데없는 말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미노루와 이사무의 '인사 무용론'도, 어른들의 입장도 모두 옳게 들리지만 양쪽 다 틀린 곳도 있다.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반드시 쓸모를 증명해야하는 건 아님을 깨닫지 못했고, 어른들은 인사를 방패 삼아 속내를 감춘다는 걸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백치화를 부른다며 TV 구매를 완강히 거부하는 부모와 TV를 보겠다며 가출까지 감행한 형제를 보면, 〈안녕하세요〉는 조금 일찍 만들어졌을 뿐인 세대 갈등 이야기처럼 수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노루와 이사무의 묵언 시위가 끝나는 대목에서, 영화는 모든 문제를 다정한 인사처럼 감싸 안는다. 진짜 "안녕하세요"가 필요 없는 세상은 없다는 걸 배워가는 아이들의 경쾌한 마지막 인사는 분명 웃음이 나는데도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1일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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