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는 마음, 내일로 기꺼이 향하기 위한 내면의 근육, 삶을 지탱하는 힘.
사랑을 말하는 예술 작품 속 언어들을 모았다. 우리의 세계가 각양각색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며.
로린 힐 ‘To Zion’
“I know that a gift so great is only one god could create
로린 힐 ‘To Zion’
and I’m reminded every time I see your face
Now the joy of my world is in Zion”
“이처럼 큰 선물은 오직 신만이 줄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아
너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돼
내 세상의 기쁨은 자이언, 네 안에 있어”
내가 삶과 사람에 대해 말하는 데 조심스러워졌다면, 그것은 온전히 아이 덕분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내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허락의 형태로 도착한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의 뜻대로 살아왔다고 믿던 비대한 마음에, 내 삶의 주체는 오직 나라는 오만한 선언에 아이는 말없이 내게 겸손을 데려왔다. 나의 능력으로 일궈낸 것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이 기쁨의 세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다 보면 아이와 쌓아가는 하루하루 속 마음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삶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가라앉고, 그 자리에는 내게 주어진 것들을 지극히 품고 싶다는 바람이 자란다.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거다. 더 많이 갖게 해달라 기도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지혜롭게 보듬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감정은 로린 힐(Lauryn Hill)이 아들 자이언 데이비드 말리(Zion David Marley)에게 선사한 노래 안에 진실되게 담겨 있다. 아이에게 보내는 찬가에는 사랑과 두려움이 엉켜 있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순간들이 로린 힐의 숨 사이사이 자리해 있다. 로린 힐이 그랬듯 나 역시 더 멀리 가지 않아도, 더 많이 가지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게 되는 순간들을 오직 한 사람을 통해 얻게 되었다.
장필순 ‘그림’
“무지개 호수 외로운 뱃길 흰 은하수를 천천히 걸어
장필순 ‘그림’
다다랐나요 꿈꾸던 그곳
오랜 시간 동안 날 지켜준 그대의 노래는
바람처럼 우리가 그리던 저 그림 속으로”
여덟 번째 정규 앨범 에 대해 음악가 장필순은 “밝고 신나진 않아도 다 듣고 나면 위로가 되는, 말하자면 우울한 위로 같은 앨범”이라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열두 개의 트랙에는 슬픔과 우울 같은 상념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마음이 가장 진하게 느껴진 건 두 번째 트랙 ‘그림’이다. 이 곡은 앨범이 나오기 한 해 전 세상을 떠난 음악가 조동진을 향한 두 동생 조동익(작곡), 조동희(작사),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음악을 만들어온 동료이자 제자 장필순(노래)의 작별 인사다. 떠나보낸 이를 향한 그리움이 장필순의 소리로, 숨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음악을 들으며 상실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고요히 응시하는 음악에서 말 그대로 ‘우울한 위로’를 받았다. 이별까지 사랑할 순 없다지만, 장필순과 그의 음악 친구들은 이별마저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고 있었다.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애도가 ‘그림’에 담겨 있다.
강아솔 ‘모두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려 걸어가네
강아솔 ‘모두가 있는 곳으로’
내가 있을 곳으로
모두가 있는 곳으로”
사랑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왔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선뜻 답을 낼 수 없었다. 내게 사랑이란 모호하고 막연한, 닿을 듯하면서도 저 멀리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을 모른 채 모두에게 애정을 쏟으려고 애쓰던 시절, 내 마음과 닮은 음악을 선물해준 강아솔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2018년 겨울, “그럼에도 계속 사랑하자”고 노래하던 그는 5년 여의 시간을 건너 완성한 네 번째 정규 앨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통해 사랑에 관한 사유를 한 편의 소설 같은 곡들로 펼쳐냈다. 앨범 제목처럼, 사랑을 잃고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가 결국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사람의 이야기.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려다 스스로를 외로이 버려두고(‘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슬퍼하며(‘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사랑하던 이를 세상에서 지워내려다(‘헤어지지 말아요’) 마침내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것”(‘사랑은’)임을 깨달았다는 고백이 일곱 개의 트랙을 따라 이어진다.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음색으로,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나를 혼자로 두지 않고 모두를 떠올렸다”(‘모두가 있는 곳으로’)고 전하는 곡들을 찬찬히 들으면서 생각했다. 사랑은 불쑥 찾아오거나 한순간에 떠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가까운 곳에 고요히 자리한다는 것을. 더 많이, 힘껏 사랑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앨범의 끝에 다다라서야 생겼다.
미츠키 ‘First Love / Late Spring’
“So please, hurry, leave me,
미츠키 ‘First Love / Late Spring’
I can’t breathe
Please don’t say you love me
胸がはち切れそうで”
“그러니까 제발, 서둘러 떠나줘,
숨을 쉴 수가 없어
제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사랑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취약함을 새로 깨닫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미츠키(Mitski)의 곡을 통해 배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에 빠졌던 경험을 토대로 가장 솔직한 언어로 써나간 미츠키의 곡 ‘First Love / Late Spring’에는 불현듯 찾아온 사랑 앞에서 한 존재가 속절없이 겪어야만 하는 내면의 혼란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있어 숨을 쉴 수가 없으니 제발 서둘러 떠나달라고,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떠올려본다. 첫사랑이란 이런 것 아닐까.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하게 한 존재의 중심을 흔들어놓는 사건이자, 키만 자란 어린 아이 같은 자신의 나약함을 여지없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 그 어떤 낭만적 수사 없이 첫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그려낸 이 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소라 ‘Track 9’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이소라 ‘Track 9’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바람이 차가워지면 이소라의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그건 아마 그의 곡 대부분이 깊은 상처와 외로움, 아픈 기억들을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집어 든 이소라의 7집에는 “이번 앨범은 ‘상처’보다는 ‘위로’에 가깝고, ‘겨울’보다는‘겨울에서 봄’과 어울린다”라고 쓰여 있었다. 손수 그린 일러스트로 완성한 앨범 커버와 그 안에 수록된 자필 메모, 함께한 멤버들과 나눈 대화와 웃음 소리가 같이 녹음된 트랙들까지 조용한 방식으로 온기를 건넸다.
그중 내 마음을 덥힌 건 ‘Track 9’이다. 이 곡을 들으며 문득 내 이름을 부르던 몇몇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그 목소리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음에도 여전히 모두에게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자주 코끝이 찡해진 채 이 노래를 들었다. 담담하게 고독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차갑기보다 따뜻했고, 다정했다. 세상의 ‘당연한 고독’과 ‘평범한 불행’ 속에서 자꾸 강해져야만 할 때, 자신이 짓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일은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로 다가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이름을 고민하던 이들의 사랑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살아가는 일이 주는 상처와 아픔을 과장하지도, 연민하지도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마음을 어루만지며 잊고 있던 사랑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곡이 참 고맙고 애틋하다. 이 곡 앞에서 나는 그 섬세한 마음을 닮고 싶어지고, 내 이름과 곁에 있는 이들의 이름을 자주 떠올리고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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