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개막 '불란서 금고' 주연…장진 감독과 연극서 첫 호흡
도전 멈추지 않는 90세 최고령 현역…"몸 여러 곳 장애, 누 안되도록 최선"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살아 있으니까 평생 해왔던 연극을 계속하는 겁니다. 제게는 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죠."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의 연극에 대한 철학은 장황하지 않았다. 그에게 연극은 아직 살아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살아야 하니 밥 먹듯이 하는 일상이었다.
다음 달 7일 개막하는 연극 '불란서 금고'에 주인공 맹인으로 출연하는 신구(90)가 10일 서울 대학로 놀(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이렇게 출연 소감을 전했다.
이 작품은 영화감독 장진(55)이 10년 만에 쓴 동명의 신작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다. 장진이 연출까지 도맡았다. 은행 건물 지하를 배경으로,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모인 은행강도 다섯 명의 맞물린 욕망을 그린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신구는 지난해 9월 장진에게서 대본을 건네받고 한 달간 고민한 뒤 출연을 승낙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속 신구의 연기에 깊은 영감을 받아 작품을 썼다는 장진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신구는 "(출연 승낙은 했지만) 막상 연습해보니까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점도 있어서 나이 들어 욕심을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며 "살아 있으니 평생 하던 일을 해야 한다. 여의찮지만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신구는 장진 감독과 영화 '거룩한 계보', '박수칠 때 떠나라' 등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함께한 적은 있지만, 연극으로는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춘다. 2005년 장진이 연출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선 당초 신구가 주인공 윌리 로먼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제작 단계에서 신구가 작품의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무산됐다.
신구는 "그때 사정이 그렇게 되면서 로먼 역을 못 하게 됐다. 지금도 아쉬운 게 그 뒤로 로먼 역을 못 해봤다"며 "하고 싶었던 역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니까 영영 오질 않는다. 이제는 (로먼 역을 맡기엔) 너무 늦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12월 선배 이순재를 떠나보내고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가 된 신구는 선배라 부를 사람이 더는 없다는 현실이 아쉽다는 소회도 밝혔다. 그는 "얼마 전에 내가 형님이라고 불렀던 이순재가 돌아가셔서 이제는 위로 모실 분이 안 계셔 아쉽기 짝이 없다"며 "저도 몸 여러 군데에 장애가 오고 있는데 잘 극복해서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작발표회에는 연출을 맡은 장진을 비롯해 12명의 출연진 전원이 참석해 신구와 함께 작품을 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장진은 "신구 선생님이 출연을 승낙해주시고 얼마 뒤 '이 작품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문자를 주셨다"며 "선생님과 그동안 연극을 같이 하지 못했다는 한탄이 있었는데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이 선생님의 여러 작품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며 "선생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구와 함께 맹인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성지루는 신구를 평소 아버지라고 부른다며 "같은 역을 맡게 된 부담보다는 아버지하고 같은 무대에서 같은 역할을 하게 돼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다. 연기자로서 부담감은 차차 올 수 있겠지만 당장은 한 무대에서 아버지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교수 역을 맡은 장현성은 "신구 선생님이 출연한다고 해 작품 출연을 결정한 부분도 있다"며 "선생님과 함께 연습하면서 몰랐던 것들을 깨닫고 울컥하는 순간이 많다. (선생님 연기는) 불필요한 것을 다 덜어낸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밀수 역의 장영남도 "배우들에게 역사와 같은 분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불란서 금고'는 3월 7일부터 5월 31일까지 놀 서경스퀘어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도 정영주, 조달환, 안두호, 금새록, 주종혁 등이 출연한다. 금새록과 주종혁은 이 작품이 연극 데뷔 무대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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