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탑승구에 들어서며 설레던 마음도 잠시, 좁디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구겨 넣는 순간 여행의 낭만은 곧장 고통으로 변한다. 무릎이 앞 좌석에 닿을 듯 말 듯 한 이른바 '닭장 수송'이 전 세계 항공업계의 수익 공식처럼 굳어진 탓이다. 하지만 모든 항공사가 승객의 무릎 공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근 항공업계 데이터 분석 결과, 여전히 승객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레그룸(Legroom, 다리 뻗는 공간)'을 넉넉히 보장하며 차별화를 꾀하는 항공사들이 눈에 띈다.
과거 1970년대 이코노미 좌석의 평균 앞뒤 간격인 피치(Pitch)는 약 35인치(88.9cm) 수준이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 평균치는 약 30인치(76.2cm)까지 쪼그라들었다. 항공사들이 한정된 기내 공간에 더 많은 좌석을 밀어 넣으며 승객 한 명이 누려야 할 공간을 야금야금 깎아낸 결과다.
공간 압축은 항공사의 수익으로 직결되지만, 승객에게는 장거리 비행의 고역을 선사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좌석 간격을 여유 있게 유지하는 항공사는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경쟁력을 갖게 된다. 단순한 운송 서비스를 넘어 비행 경험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가 바로 레그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항공업계에서 가장 넉넉한 이코노미 좌석을 제공하는 곳은 일본과 중동 항공사들로 나타났다.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는 나란히 34인치(86.4cm)의 좌석 간격을 제공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쾌적함을 자랑한다. 일본 특유의 세밀한 서비스 정신이 좌석 공간 배치에도 반영된 모습이다.
중동의 대표 주자인 에미레이트 항공 역시 34인치의 레그룸을 제공하며 공동 1위에 올랐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지향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전략이 일반 이코노미석에도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이들 항공사는 업계의 일반적인 좌석 압축 흐름을 거스르며 승객 편의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있다.
한국 항공사들의 상황은 복합적이다. 대형 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노선 주력 기종에서 대략 33~34인치의 레그룸을 유지하며 글로벌 상위권 체면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한항공은 보잉 777-300ER 기종의 좌석을 기존 9열(3-3-3)에서 10열(3-4-3)로 늘려 좌석 밀도를 높이려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좌석 너비가 줄어들면 서비스 질이 저하된다는 소비자 불만과 더불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조건인 '서비스 수준 유지' 위반 가능성을 제기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에 결국 개조 계획을 대부분 철회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반면 국내 저가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는 '이코노미 35'라는 명칭으로 무려 35인치(88.9cm)의 좌석 간격을 제공하며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는 글로벌 1위 그룹의 34인치보다도 넓은 수치로, 1970년대의 황금기 레그룸을 재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일부 기종은 좌석 간격이 29~31인치에 불과해 승객 1인당 점유 면적이 가장 좁은 것으로 조사되어 대조를 이뤘다.
세계 항공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항공사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미국 내에서 가장 넓은 좌석을 제공하는 곳은 저가 항공사 출신인 제트블루(JetBlue)로, 32.3인치(82cm)를 기록하며 미국 대형사들을 앞섰다.
델타항공, 알래스카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은 31인치에서 31.8인치 사이의 간격을 기록하며 10위권 끝자락에 이름을 올렸다. 업계 평균보다는 다소 넓은 수준이지만, 1위 그룹인 일본·중동 항공사들과 비교하면 약 5~7cm가량 좁은 수치다. 단 몇 센티미터 차이로 무릎이 앞 좌석에 닿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기내 환경을 고려할 때, 실제 승객이 체감하는 피로도 차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들의 이 같은 좌석 배치 전략은 각자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한 명이라도 더 태워 단기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항공사가 있는 반면, 넓은 공간을 통해 장기적인 고객 신뢰를 확보하려는 항공사도 존재한다.
비행기 표를 예매할 때 단순히 가격과 시간만 볼 것이 아니라, 내 무릎이 쉴 곳이 있는지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항공 전문 매체 심플 플라잉(Simple Flying)과 컨데나스트 트래블러(Condé Nast Traveler)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이코노미 클래스 안에서도 분명 '계급'은 존재하며 그 격차는 점차 벌어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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