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NATO) 동맹의 결속을 흔드는 변수로 부상하면서, 미국이 배제된 상황에서도 유럽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억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 그린란드와 관세, 시험대 오른 동맹
알자지라·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 문제를 둘러싸고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하며, 매각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유럽 나토 회원국들을 지목해 대미 관세를 단계적으로 10%, 25%까지 높이겠다고 밝히며, 안보·영토 문제를 통상 보복과 연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그린란드 위기’는 유럽연합(EU)이 긴급 정상회의를 준비할 정도로 파장이 커졌다. 유럽 각국에서는 “동맹국에 관세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그린란드 당국 역시 자치권과 나토 체제 아래에서의 방위를 강조하며, 미국의 단독 지배 구상에 선을 긋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나토 내부에서는 북극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와 동맹 결속을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가 동시에 제기되며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나토에 따르면, 나토는 조약 5조의 집단방위 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실제 군사 역량에서는 미국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미 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나토의 공중경보통제(AWACS), 정보·감시·정찰(JISR), 미사일 방어, 공중급유, 전략수송 등 고급 역량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며 이들 역량은 동맹 전체 전력을 하나로 묶는 핵심 ‘연결고리’로 기능해 왔다.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들은 수적으로는 방대한 병력과 다양한 무기체계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규모·장기 작전을 독자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전략 자산과 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평가된다. CEPA는 특히 ISR(정보·감시·정찰), 장거리 정밀타격, 전략 수송, 미사일 방어, 통합지휘통제(C2)를 ‘나토의 구조적 공백’으로 규정하며, 이 핵심 기능들이 대부분 미국이 제공해 왔다고 지적한다.
◇ 미국 없는 나토, 군사적 공백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이 미국이 빠진 나토 전력을 분석한 연구보고서(Defending NATO without the Americans)에 따르면, 나토가 러시아와 같은 군사 강대국과 충돌할 경우, 모든 가용 전력을 동원해 방어에 나서더라도 장기간 우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다.
독일의 분석기관인 엑스퍼트.디지털(Xpert.digital)은 유럽의 미국 의존을 △정보·감시·정찰(ISR) △위성 통신·항법 △정밀 미사일 △대공망 제압(SEAD) 능력 △사이버·전자전 △전략 기동성 △핵 억지력 등 6개 분야에서 정리하며, 미국의 지원이 줄어들 경우, 유럽 방위가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유럽이 위성 기반 통신과 위치정보에서 미국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미국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군사작전 수행 능력 자체가 제약받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지난 1월 유럽의회 연설에서 “유럽이 미국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계속 꿈꾸라고 말하겠다”며 유럽 독자 방위론에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같은 연설에서 뤼터 총장은 미국의 전통적 군대 주둔과 핵우산이 유럽 안보의 결정적 요소라며, 유럽판 나토나 EU 상설군 같은 구상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보고서는 유럽이 전략 자산과 지휘체계를 대규모로 확충하고, 국방비를 장기간 국내총생산의 2%를 넘어선 수준으로 유지해야만 ‘미국 없는 나토’ 시나리오가 현실적인 방어 선택지로 부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군사전문가들도 당분간 나토의 군사력과 억지력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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