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최선규가 과거 3살 딸이 교통사고로 ‘현장 즉사 판정’을 받았던 순간부터, 긴 치료와 가족의 선택 끝에 현재는 캐나다에서 항공사 지상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근황까지 직접 전해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최선규는 최근 유튜브 CGN 채널에 출연해 1992년 9월 26일 겪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떠올렸습니다. 당시 그는 생방송을 마친 뒤 “딸 교통사고로 생명 위독”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으며,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사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밝혔습니다.
골목길에서 이삿짐 트럭에 딸이 두 차례 치인 뒤 바퀴에 깔리는 처참한 사고였습니다. 최선규는 “딸이 피를 많이 흘렸고, 현장에서 즉사 판정이 났다”고 당시의 절박함을 설명하며, 병원으로 가는 길조차 공사 구간 정체로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딸은 하얀 천에 덮여 있었고, 최선규는 품에 안은 채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에게서 미세한 온기와 움직임을 느끼고 의료진에게 “우리 딸 안 죽었다. 살려달라”며 계속 도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그 순간, 딸의 입안에 손을 넣어 목에 걸린 핏덩이를 꺼낸 뒤 호흡이 돌아오는 장면을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습니다.
사고 이후 과정은 더 길고 조용한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딸은 중환자실과 병원을 오가며 약 2년 가까이 치료를 이어갔고, 최선규는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눈이 불편한 딸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자 상처받지 않도록 가족을 캐나다로 보내는 결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기간 ‘기러기 아빠’ 생활을 이어가며 가족을 뒷바라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모은 건 “딸의 현재”였습니다. 최선규는 딸이 성인이 된 뒤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했고, 현재 캐나다에서 항공사 지상직 승무원으로 근무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긴 시간의 회복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치료·재활·가족의 선택이 겹겹이 쌓여 만든 결과였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최선규는 1980~90년대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자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고백은 직업적 이력보다도, 한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현실의 무게와 회복의 시간을 전면에 놓았습니다. “다시 그 시간을 반복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는 말에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트라우마의 그림자가 담겼습니다.
가족이 흩어져 버텨야 했던 선택과 회복의 시간이 알려지며, 최선규의 딸 교통사고 관련 고백은 개인의 사연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지금, 여기의 가족’과 ‘돌봄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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