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장벽에도 북미 매출 14% ↑…반도체 '질주'·배터리 '멈춤', 희비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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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장벽에도 북미 매출 14% ↑…반도체 '질주'·배터리 '멈춤', 희비 교차

폴리뉴스 2026-02-10 14:56:27 신고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고관세 기조와 보호무역 강화에도 한국 주요 기업들의 북미 매출이 오히려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와 IT, 제약·바이오가 성장을 주도한 반면, 이차전지와 일부 전통 제조업은 뒷걸음질치며 업종 간 온도차가 뚜렷하게 벌어졌다. 같은 '북미 시장' 안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구조가 확인된 셈이다.

기업 실적을 종합 분석한 결과, 매출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북미 매출을 별도로 공개한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3분기 북미 매출은 약 343조8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42조원 넘게 늘어 증가율은 14%를 웃돌았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 증가율이 8% 수준에 머문 것과 비교하면 북미 시장에서의 성장 속도가 훨씬 가팔랐다.

이에 따라 전체 매출에서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도 29%대에서 31% 수준으로 확대됐다. 단순한 수출 시장을 넘어 한국 기업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수익원'으로 북미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미국 시장만큼은 비교적 견조한 소비와 투자가 이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장 두드러진 업종은 IT·전기전자였다. 북미 매출은 130조원대에서 157조원대로 20% 이상 증가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요를 자극하면서 고부가 메모리와 서버용 제품 판매가 급증한 덕분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약진이 눈에 띈다. 한 기업은 북미 매출이 60% 이상 급증하며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북미에서 거두는 구조로 바뀌었다. 또 다른 대형 전자기업 역시 북미 매출이 10% 넘게 늘었다. 스마트폰, 가전 등 완제품 수요 회복과 함께 반도체 사업 호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일부 생활가전 중심 기업은 매출이 소폭 줄어 같은 업종 내에서도 체력 차이가 나타났다.

제약·바이오 업종도 고성장을 이어갔다. 위탁생산(CMO)과 바이오시밀러 수출이 늘면서 북미 매출이 두 배 이상 확대된 기업도 적지 않았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글로벌 최대 규모인데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국내 업체들이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미 매출 비중 역시 20% 후반대로 상승하며 '미국 의존형 성장 모델'이 뚜렷해졌다.

AI 확산에 따른 전력 인프라 수요 증가는 전력·중공업 기업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변압기, 전력기기, 스마트그리드 관련 장비 수출이 늘면서 일부 기업은 북미 매출이 50~80%대 급증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신·증설이 이어지며 전력 설비 투자가 동반 확대된 영향이다.

반면 자동차 업종은 기대만큼의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완성차와 부품사를 포함한 북미 매출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총액은 소폭 늘었지만, 전체 매출 대비 북미 비중은 오히려 낮아졌다. 고관세와 현지 생산 확대, 전기차 수요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예전 같은 고성장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평가다.

다만 세부적으로 보면 명암이 갈린다. 완성차 업체들은 판매 확대와 가격 인상 효과로 매출이 늘었고, 현지 공장 증설과 함께 부품사와 타이어 업체들의 실적도 개선됐다.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해 관세 부담을 줄이고 물류비를 절감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일부 타이어 기업은 북미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뛰며 깜짝 성장세를 기록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분야는 이차전지였다. 북미 매출이 30~40%대 감소한 기업이 잇따랐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재고 조정, 현지 보조금 정책 변화 등이 겹치며 배터리 주문이 줄어든 영향이다. 공격적인 증설 이후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단기 실적 부담이 커진 모습이다.

이 밖에 건설·건자재, 운송, 조선·기계·설비 업종도 북미 매출이 감소세를 보였다. 금리 부담과 투자 지연, 글로벌 물동량 둔화 등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전통 제조업일수록 미국 내 투자 사이클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두고 "북미 시장이 한국 기업 실적의 버팀목이 된 동시에, 업종별 경쟁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험대가 됐다"고 평가한다. 기술력과 고부가가치 제품을 보유한 기업은 관세와 규제 장벽을 뚫고 성장했지만, 수요 둔화에 취약한 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현지화'와 '차별화'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생산과 공급망을 미국 내로 옮기거나, AI·바이오처럼 구조적 성장 산업에 올라탄 기업만이 북미 시장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보호무역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북미 매출 확대는 기회이자 동시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시장 의존도가 커진 만큼 정책 변화나 경기 변동에 따라 실적 변동성도 확대될 수 있어서다. 한국 기업들이 북미에서 이어온 성장세를 지속하려면 기술 경쟁력 강화와 현지 맞춤 전략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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