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운이 7할이고 기량은 3할이다는 뜻이다. 그런데 운이 99%이고 기량은 1%인 경우도 있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 선수가 대표적 사례이다. 준준결승부터 운이 따라줘 결승까지 왔는데, 남자 1,000m 결승에서 앞서 달리던 세계 정상급 4명의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도미노처럼 서로 넘어지면서 꼴찌로 달리던 브래드버리가 유유히 홀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다.
브래드버리는 호주의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이자 남반구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누렸고 그는 이후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의 대명사가 됐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에서는 대이변을 일으킨 스노보드 김상겸 선수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메달 가능성은 10%가 채 되지 않았고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따낸 후배 이상호에게 모든 관심이 쏠렸다.
역대 최고 순위인 예선 8위로 16강전에 오른 김상겸은 상대였던 얀 코시르(슬로베니아)가 레이스 도중 넘어져 손쉽게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는 이번 시즌 세계 1위이자 홈코스의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 스노보드는 개최국 선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대회 코스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연습을 할 기회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예선을 1위로 통과한 피슈날러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레이스 후반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45세의 백전노장 피슈날러가 잇따라 기문을 놓치며 실격한 것이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두 번 연속 상대 실수로 승리할 확률은 매우 낮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김상겸은 대회 당일 컨디션까지 좋았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즉 피슈날러가 제 기량을 발휘했다면 37세의 김상겸이 4번째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상겸이 깜짝 메달을 목에 걸면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의 모태범 선수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우승 후보는 단연 이규혁. 모태범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하위 그룹에 속했던 모태범이 19명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1차 레이스를 마친 뒤 빙판을 고르는 정빙 시간이 됐다.
그런데 메인 정빙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예비용으로 준비됐던 다른 정빙기가 투입됐지만 이 정빙기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상위 그룹 20명의 경기가 90분이나 지연됐다.
이규혁 등 메달 후보들은 초조하게 기다리다 바이오리듬을 놓쳤고 설상가상으로 빙질은 모태범이 탈 때보다 훨씬 나빴다.
결국 1-2차 레이스 합계에서 모태범이 1위에 오르면서 한국 빙속 74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고 에이스 이규혁은 15위에 머무르고 진한 눈물을 쏟아냈다.
이 대회 남자 10,000m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금메달 후보 0순위는 세계기록 보유자인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로 적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이승훈이 12분58초55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먼저 경기를 끝냈지만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바로 크라머가 있기 때문이었다. 초반부터 힘차게 달린 크라머는 레이스 중반까지 이승훈보다 기록이 앞서 금메달이 유력해 보였다.
그런데 8바퀴 반을 남기고 확률 1%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인코스를 달리던 크라머는 규정에 따라 당연히 아웃코스로 나가야 했다. 크라머가 아웃코스로 빠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크라머 코치인 제라드 캠커스 코치가 뭐에 홀린 듯 손가락으로 인코스로 들어가라고 가리키자 크라머는 급하게 방향을 바꿔 인코스로 다시 들어왔다. 인코스를 두 번 연속 타면 실격이 된다.
크라머는 기록상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규정에 따라 실격 처리됐다. 코치의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금메달을 억울하게 놓친 그는 고글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화를 참지 못했다. 반면 이승훈과 우리 지도자들은 ‘어부지리’ 금메달에 크게 환호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다. 실력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1초 앞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 바로 스포츠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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