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준의 오목렌즈] 107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타계 직전까지 공무 수행차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결국 나라 밖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전 총리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고, 정치권에 데뷔해서 스타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가였다. 개인적으로 국회 출입 기자 당시 이 전 총리가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어서 기자회견에 자주 참석해 많은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정치인 이해찬’에 대한 인상을 묻는다면 ‘민주당의 정치적 이익과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는 유능한 권력자’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도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인물”이라면서 “일단 이해찬 총리가 굉장히 특출난 인물이었던 건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감각이나 당을 장악하는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었던 정치인이고 그런 혜안을 가지고 미래를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좀 과하게 말씀하셨지만 민주당의 20년 장기 집권 플랜을 얘기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이해찬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 선두에 계시던 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 이해찬이라고 하면 진짜 우리 팀이 지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진짜 잘 짜고 자기 선거도 다 이기고 그런 인물이었다. 다 이기고 당권 쥐고 있을 때도 선거들에서 거의 다 이겼던 것 같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모습. <사진=이해찬 전 총리의 인스타그램>
이번 오목렌즈 전화 대담(2월5일 15시)에서는 세상을 떠난 정치인 이해찬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봤다.
이 전 총리는 본인 스스로 다선 국회의원, 당대표, 국무총리, 장관 등을 다 해봤지만 무엇보다 이 전 총리는 플레이어이기 보단 ‘전략의 설계자’이자 실세 참모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림을 크게 그릴 줄 아는 분이었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분이고 여야를 넘나들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확실하게 진영을 구축하고 그 진영의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박 센터장은 이 전 총리의 공과를 논할 때 좋은 면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서 김대중 정부 당시 교육부장관 재임 시절 “조금 미스를 했다”고 주장했다.
소위 대입 무시험 전형 즉 수시라는 걸 만들고 확대했는데 수시 비중이 커지면서 지금의 학종(학생부종합전형)과 같은 건들이 자리잡았고 결국 부모의 배경이 개입될 여지가 매우 커져서 교육 격차가 심화되긴 했다. 한 마디로 ‘이해찬 세대’라는 이름이 만들어져서 자조 섞인 푸념이 들리게 됐는데 아무튼 이러한 교육 분야의 실정들이 좀 있었다.
이 전 총리는 故 김근태 의장과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독재 정권의 혹독한 고문을 받았던 인물이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평생 고생했는데 60대 초중반부터 기자들 사이에서는 수전증이 느껴질 정도로 건강이상설이 파다했었고 그렇게 말년까지 건강 문제로 시달렸다고 할 수 있다. 박 센터장은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한 부분이 크고 본인 스스로도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자 워커홀릭”이었다고 평가했다.
말년까지 일을 너무 많이 하셨다. 보통의 국회의원이나 정무직들은 적당히 놀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돈 받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이분한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안든다.
이 전 총리의 장례식장에는 주로 민주당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지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비롯 여야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조문을 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센터장은 아래와 같은 지점을 환기했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 진영에서의 역할을 굉장히 많이 하셨던 분이고 정치권 큰 어른의 포지션이라서 국민의힘 진영에서도 조문을 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전 총리는 국민 전체의 지도자라는 이런 평가를 듣는 인물은 아니었다. 민주당 진영에서의 엄청 큰 스승이자 어른 이런 느낌이 강하다. 자기 진영을 지키는 데 탁월했던 분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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