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관악구에서는 한 달에 걸쳐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주제로 한 시민의회가 운영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친 숙의 과정에는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의원과 퍼실리테이터, 준비팀, 시민사회 모니터링단을 포함해 매회 70명 안팎의 참여자가 함께했다. 단순히 의견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충분한 학습과 토론을 전제로 공공 의제를 다루는 숙의 민주주의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청회나 토론회와는 분명히 다른 시도였다.
관악기후시민의회의 경과 : 한 달 간의 숙의 실험
이 시민의회는 특정 정책의 찬반을 묻는 공론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관악구에서 기후위기는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가", "어떤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시민 스스로 정의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숙의 과정은 '학습–토론–정리'의 반복으로 구성되었고, 기술적 정보와 정책적 선택지를 접하는 과정에서 시민의원들의 인식은 점차 변화해 갔다. 규제나 기술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시민의 역할과 책임, 제도의 구조, 지속가능한 전환의 조건으로 논의의 초점이 이동하는 흐름으로 구성되었다.
나아가 관악 기후시민의회는 기후위기를 '환경 정책의 하나'로 다루지 않았다. 건강, 먹거리, 폐기물, 제도적 대응 등 시민의 일상과 직접 맞닿은 영역을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재구성했고, 이를 통해 추상적인 위기 담론이 아닌 생활의 문제로서 기후위기를 인식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시민의회의 논의가 기술적 해법이나 규제 중심 논의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시민 각자의 경험과 관점을 숙의의 중요한 자원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관악기후시민의회의 가장 큰 의의는 기후위기를 추상적 목표나 국가 전략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풀어낸 숙의의 경험에 있다. 청년·1인 가구가 밀집한 주거 구조, 관악산과 도림천이라는 자연환경, 대학과 지역이 중첩된 생활권이라는 관악의 조건은 기후위기를 건강, 먹거리, 이동, 교육, 폐기물과 같은 일상적 의제로 드러내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숙의가 만들어낸 인식의 이동
그 결과 관악기후시민의회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구체적인 정책 제안 이전에 시민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많은 시민의원이 기후위기를 기술 발전이나 정부 규제의 문제로 인식했지만, 학습과 토론이 반복되면서 논의의 중심은 점차 시민의 역할, 제도의 구조,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로 이동했다. 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결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최종 정책 제안에도 반영되었다. 시민의회는 기후시민의회의 상설화, 탄소중립센터 설립, 기후위기 적응형 청년 과일 공동구매, 공유주방, 대학–지역 협력형 기후·탄소중립 교육 네트워크, 폐기물·재활용 감축 및 추적 시스템 구축 등 비교적 구체적이고 정책 채택 가능성이 높은 제안들을 도출했다. 이는 시민의 숙의가 선언적 요구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 설계의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국가기후시민의회, 시작 단계에서 다시 묻는 질문
국가기후시민의회 논의는 최근의 헌법적·입법적 변화 속에서 본격화되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장기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장기 감축 경로가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해야 하며, 현세대의 선택이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야 하는 입법 과제를 안게 되었다. 현재의 요구는 분명하다.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한 장기 감축 경로를 입법부가 책임지고 설정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것, 그것이 입법부로서 국회의 의무다!
최근 발표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 감축 경로 입법 과정에서 국가 차원의 기후공론화, 즉 국가 기후시민의회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보고서는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독립적인 과학적 근거(탄소예산, 감축 경로)와 시민 참여를 통한 숙의를 결합한 공론화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한다.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이 충분한 학습을 거쳐 감축 경로와 정책 선택지에 대해 숙의하고, 그 결과를 국회와 정부에 권고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 여론조사가 아닌, 입법을 보완하는 숙의 기반 공론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다만 보고서는 동시에 국가 단위 시민의회의 한계도 지적한다. 일정의 촉박함, 논의 주제의 추상성, 권고안이 실제 입법과 정책으로 얼마나 실질적으로 반영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불확실성이다. 결국 국가 기후시민의회는 필요조건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관악의 실험은 어떻게 국가 정책과 연계될 수 있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관악기후시민의회의 실험은 국가기후시민의회 논의에 중요한 보완점을 제공한다. 관악의 시민의회는 장기 감축 경로와 같은 추상적 수치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기후위기가 시민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험되는지를 먼저 드러냈다. 이는 국가 기후시민의회가 다루게 될 감축 경로 논의를 생활 세계와 연결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한 관악의 사례는 시민의회가 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넘어 이행 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 제도, 행정 구조, 지역 자원을 숙의 과정에 함께 올려놓음으로써, 시민의 판단이 보다 현실적인 정책 패키지로 정리되었다. 이는 국가 기후시민의회가 권고안을 설계할 때, 중앙정부 차원의 목표 설정과 더불어 지역 단위 실행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국가'기후시민의회와 '지역'기후시민의회는 대체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다. 국가 차원의 숙의가 방향과 원칙을 설정한다면, 지역 시민의회는 이를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관악 기후시민의회는 이러한 다층적 기후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미리 보여준 실험이었다.
2026 지방선거와 시민의회 : 새로움은 절차에서
이 글을 쓰는 나는 현재 지방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후보자의 위치에 있다. 관악기후시민의회에서도 나의 역할은 준비팀이면서 시민의원 그리고 과정 중에 운영진의 역할까지 복합적인 정체성으로 준비기관을 포함하는 6개월의 여정에 참여해 왔다.
이 전체 과정에 참여하며 얻은 가장 큰 문제의식은, 기후정책의 성패 혹은 시민의회라는 절차적 정당성 기제가 개별 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시민이 충분히 학습하고 숙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 기후정책은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다.
세상에 깜짝 놀랄 새로운 그 무엇은 없는 법. 선거를 준비하면서 골똘해봤지만 지방의원의 역할은 새로운 정책을 발명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새로움은 시민의 숙의가 행정과 제도로 연결되도록 통로를 만들고, 시민의 판단이 예산과 조례, 정책 이행으로 이어지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 과정에서 더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관악기후시민의회의 실험이 일회성 경험으로 남지 않고, 지역과 국가 차원의 기후 거버넌스로 확장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일은 앞으로의 정치가 감당해야 할 과제다. 관악에서 시작된 이 작은 실험이 국가기후시민의회라는 더 큰 제도적 상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숙의를 민주주의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 놓으려는 정치적 선택이다. 관악기후시민의회는 그 선택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내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기후위기는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관악에서 시작된 이 작은 실험이 국가 차원의 제도적 상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의 숙의를 정치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놓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그것이 관악기후시민의회를 함께 만든 시민들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에게 정치가 져야 할 책임이라고 믿는다.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