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헌법 개정과 안보 노선 전환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동북아 외교 지형에도 파장이 번지고 있다.
유튜브 '日テレNEWS' 보도화면 캡처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 다음 날이었던 8일 민영 방송과 NHK 등에 잇따라 출연해 헌법 개정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헌법 개정은 자민당의 당론”이라며 “각 당이 준비한 개헌안을 헌법심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면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전체 465석 가운데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를 넘는 316석을 확보했다.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 의석까지 합하면 352석에 달한다.
자민당은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시하고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하는 방향의 개헌을 추진해 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핵무기 보유와 제조, 반입을 금지한 비핵 3원칙과 관련해서도 “최종적으로 어떤 표현을 사용할지는 아직 모른다”며 재검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 수출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우호국과 뜻을 같이하는 나라가 국민을 지키는 목적이라면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 두번째)가 8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승리한 당선자 리스트에 당선을 의미하는 붉은 장미를 달아주고 있다. / NHK 보도화면 캡처
일본 헌법은 전후 체제의 핵심인 ‘평화헌법’ 틀을 갖고 있다. 특히 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돼, 일본이 ‘전쟁 수행’을 전제로 한 군대를 헌법에 명확히 두기 어렵다는 논리가 이어져 왔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자위대가 존재해 왔고 역대 정부는 이를 방위를 위한 조직이라는 해석으로 정당화해 왔다. 자민당이 추진하는 ‘자위대 명기’는 이 해석 구조를 헌법 문장으로 정리해 안보 정책의 제약을 줄이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국제적으로 ‘전쟁 가능 국가’는 군대와 무력 사용 권한을 헌법이나 법 체계에 분명히 담아 필요할 경우 국가가 전쟁 수행까지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춘 나라를 뜻한다. 일본은 헌법 9조 때문에 법리적으로는 그런 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남아 있는데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수록 주변국들이 일본의 역할 확대를 경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문제도 다시 꺼냈다. 그는 “동맹국과 주변 국가의 이해를 얻는 것이 우선”이라며 “참배를 둘러싼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경 정비’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 시절부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인물이다. 총리 취임 이후에는 직접 참배 대신 공물 봉납으로 수위를 조절해 왔지만 이번 발언은 향후 행보를 다시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적극재정과 위기관리 투자 확대, 소비세 감세 논의 가속 등 경제 정책에서도 강경한 정책 전환을 예고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메시지가 전해지자 중국은 즉각 강경 반응을 내놨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총선 결과와 관련해 “일본 집권 당국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외면하지 말고 평화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한다”며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린 대변인은 특히 대만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거론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잘못된 발언을 철회하고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지킬 성의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침략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반성할 수 있는지의 문제”라며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배신이고 죄책을 부정하는 것은 재범을 의미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중일정상회담 자료 사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중일 관계는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뒤 눈에 띄게 냉각됐다. 이후 중국 당국이 자국민을 상대로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했고 일부 항공사들은 일본 노선에 대해 무료 환불과 변경을 적용하는 등 여파가 이어졌다. 다카이치 총리 취임 당시에도 중국은 관례적으로 시진핑 국가주석 명의로 보내던 축전을 보내지 않고 리창 총리 명의의 축전만 발송했다.
현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개헌 논의 가속과 안보 노선 조정을 꺼내 든 만큼 향후 일본 내 정치 일정이 외교 변수로도 작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자민당이 헌법심사회 논의를 주도하며 자위대 명기나 긴급사태 조항 같은 쟁점을 전면에 올릴수록 중국은 대만 문제와 맞물린 일본의 군사·안보 역할 확대를 경계하며 대응 수위를 높일 여지가 있다. 일본의 개헌 드라이브가 국내 정치 의제를 넘어 주변국과의 긴장선을 건드리는 이슈로 번지면서 동북아 정세가 다시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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