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은 단순한 가격 지표가 아니다. 자금의 이동 경로와 정책의 실제 작동 여부, 계층 이동과 지역 격차가 함께 반영된 구조적 결과다. 수도권 집값의 변화는 늘 서울에서 먼저 감지됐고, 그 흐름은 외곽으로 확산돼 왔다. 이번 시리즈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규제 국면에서, 서울이 보내는 신호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서울은 지금 하락의 초입인지, 수요 재배치의 기점인지, 혹은 자본 이동의 기준선으로 굳어지고 있는지를 두고 판단이 엇갈리는 지점에 서 있다. 서울에서 형성된 가격선이 경기 남부와 경인선 축, GTX 노선, 1기 신도시로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따라가며 2026년 수도권 집값의 흐름과 그 구조적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
[직썰 / 임나래 기자]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배경으로 경기 남부 주택시장이 구조적 변곡점에 들어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축으로 한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와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본격화되면서, 소득과 일자리를 기반으로 한 실거주 수요가 집값을 견인하고 있다.
용인을 중심으로 수원·화성까지 ‘반도체 벨트 프리미엄’이 확산되는 반면, 같은 산업축에 속한 평택·이천은 공급 부담에 발목이 잡혔다. 전문가들은 경기 남부 주택시장이 더 이상 ‘서울 대체지’가 아닌, 산업과 고용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주거 시장’이라고 평가한다.
◇‘서울 대체지’ 프레임 탈피…산업 기반 실수요가 판을 바꿨다
반도체 업황 호조 속에 경기 남부, 이른바 ‘반도체 벨트’가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용인 일대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와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약 360조원, SK하이닉스는 약 600조원을 투입해 총 1000조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를 진행한다. 단기 개발 호재가 아니라, 장기 수요를 만들어내는 산업 기반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이번 상승은 서울 규제로 자금이 밀려난 ‘풍선효과’와는 결이 다르다. 광명·구리·과천이 서울의 주거 수요를 흡수한 ‘대체 주거지’였다면, 용인·수원·평택 등 경기 남부는 산업과 일자리가 수요의 출발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연구·개발(R&D) 인력과 엔지니어 등 고연봉 상용직 근로자가 장기간 근속하는 구조다. 이들은 직주근접을 중시하고, 단기 시세 차익보다는 실거주를 선택한다. 신축·대단지·브랜드 아파트 선호가 뚜렷하고, 가족 단위 이주와 함께 교육·상권·문화 인프라가 결합된 자족형 도시 구조를 선호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고소득 실거주 수요가 누적되면 집값의 하방이 단단해지고, 도시의 체질 자체가 바뀐다”고 말했다.
◇최대 수혜지는 ‘용인’…신축·역세권만 오른다
반도체 벨트의 최대 수혜지는 단연 용인이다.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와 삼성전자 국가산업단지가 동시에 들어선다. SK하이닉스는 1기 팹(Fab)을 건설 중이며, 향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까지 집적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국가산업단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패스트트랙이 적용돼 2026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용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부터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9일 기준 주간 상승률은 0.45%로 정점을 찍었다. 특히 수지구는 2월 첫째 주 0.59% 올라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부 신축·선호 단지는 15억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됐다.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제한되고, 갭투자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투자 수요가 아니라 고소득 실거주 수요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상승은 선별적이다. 신축·역세권·직주근접 입지에 매수가 집중되는 반면, 외곽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미분양이 쌓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용인 미분양은 지난해 1월 147가구에서 12월 447가구로 1년 새 204.1% 늘었다. 가격은 오르지만 지역 간 온도차도 함께 커지고 있다.
◇산업 배후지 효과…수원·화성도 ‘완만한 상승’
수원과 화성도 반도체 벨트 영향권에 있다. 지난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용인 4.17%, 수원 4.13%, 화성 3.19%로, 경기도 평균(1.37%)을 크게 웃돌았다. 주간 매매가격지수 역시 상승세다.
수원은 삼성전자 디지털시티를 중심으로 본사·R&D 인력이 주택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영통·광교 일대는 대기업 연구직·전문직 종사자가 선호하는 대표적인 직주근접 지역이다. 신축·대단지 위주의 거래가 이어지면서 교육·의료·상업시설이 갖춰졌고, 자족형 고급 주거지로서의 성격이 강화됐다.
화성은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의 배후 주거지다. 가격 상승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산업단지 근무자를 중심으로 실거주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전세 수요가 강해 일부가 매매로 전이되는 흐름도 나타난다. 화성 역시 단순 외곽 베드타운을 벗어나 산업벨트의 생활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평택·이천은 ‘공급 부담’…같은 벨트, 다른 결과
반면 평택과 이천은 뚜렷한 온도차를 보인다. 2월 첫째 주 기준 평택 아파트 매매가격은 –0.16%를 기록하며, 2024년 2월 넷째 주 이후 102주 연속 하락했다. 이천도 반등에 실패했다.
배경은 공급 과잉이다. 2020년대 초반 반도체 호황기에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주택 공급이 한꺼번에 몰렸고, 이후 미분양이 누적됐다.
업계는 이 주거 수요를 가른 근본적인 요소로 일자리의 ‘질’을 지목한다. 수원·용인은 본사와 R&D 중심의 고연봉·장기 근속 인력이 거주하는 구조인 반면, 평택·이천은 생산라인 중심이다. 교대근무, 단신 근로자, 기숙사·사내 숙소 비중이 높아 가족 단위 고가 주택 수요가 제한적이다.
다만 미분양은 일부 해소되는 흐름이다. 평택 미분양은 지난해 1월 6438가구에서 12월 3292가구로 48.9% 줄었다. 이천도 같은 기간 33.2% 감소했다. 다만 최근 다시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단기간에 시장이 반전될지는 불확실하다.
◇‘입지’에서 ‘일자리 프리미엄’으로…중장기 시험대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황이 유지될 경우, 경기 남부 주택시장이 ‘고용 안정 → 소득 유지 → 실거주 수요 지속’의 선순환 구조를 주목한다. 단기 금리나 정책 변수에도 산업 기반이 탄탄한 지역은 수요가 쉽게 꺾이지 않는다.
교통과 서울 접근성에 의존하던 기존 ‘입지 프리미엄’에서 벗어나, 어떤 산업과 일자리가 지역에 뿌리내렸는지가 집값을 좌우하는 시대다. 용인·수원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는 서울의 대체지가 아닌, 독립된 주거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다만 반도체 클러스터와 국가산업단지 효과가 본격적인 주거 수요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산라인과 연구시설이 순차적으로 가동되고 인력이 대거 유입되는 시점에서 변화의 윤곽이 더욱 분명해질 전망이다.
부동산업계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 벨트의 주거 프리미엄은 이제 형성 단계”라며 “산업 인프라 완공 시점까지 중장기 시계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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