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핵발전소 2기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가 만든 핵발전 확대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에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신규 원자력발전소(원전)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등으로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존 전력 생산 비중의 약 30%를 차지하던 석탄발전을 줄이게 되면 그 공백을 실질적으로 채울 수 있는 게 '원전'밖에 없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김 장관은 또 "기후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심의 전력 운영이 필요한데,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에너지 섬나라'이면서도 동서의 규모가 짧아 재생에너지의 주력 전원인 태양광만으론 어렵다"고 말했다.
용어 정리부터 하자면, 원자력발전은 잘못된 표현이다. 최무영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은 잘못된 표현이고 '핵'발전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인 열로 물을 끓여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하는 만큼 핵분열 화력발전소 내지는 줄여서 핵발전이라고 하는 게 맞다는 설명이다. 이에 이하 글에서는 원자력발전을 핵발전으로 통칭한다.
여하튼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수요를 전망해 이에 필요한 발전소 건설 등 계획을 2년 주기로 수립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계획이 담긴 11차 전기본을 예정보다 늦은 지난해 2월에 확정했고, 이재명 정부는 올해 하반기 완료를 목표로 12차 전기본을 수립하고 있다. 12차 전기본은 이재명 정부가 발표하는 첫 중장기 에너지 계획인데, 윤석열 정부의 핵발전 확대 계획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쟁점은 11차 전기본에 담긴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이었다. 11차 전기본에는 2037~2038년 도입을 목표로 대형 핵발전소 2기와 소형모듈핵발전(SMR) 3기 등 총 3.5GW(기가와트) 규모의 핵발전소 건설계획이 담겨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그동안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전환'과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해당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방식) 원칙을 강조했던 이재명 정부가 공론화(두 차례 정책토론회와 국민 여론조사)를 내세워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김 장관은 "두 차례 정책토론회 뒤 국민 여론조사를 거친 결과,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계획이 추진돼야 한다는 답변이 60%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앞세웠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과 결과에 비판과 의문이 쏟아졌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신규 원전 부지 선정 기준과 입지 갈등, 사고 발생 시 주민 보호와 책임 문제 등 핵심 쟁점이 공론화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탈핵 비판 여론을 의식해 요식행위를 밟은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김 장관은 "여론조사 등이 부실했다는 문제 제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주요 쟁점은 12차 전기본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토론하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100GW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여기에 신규 핵발전소까지 추가되면 전력 과잉으로 전력망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력망은 전력 공급과 수요가 맞는 조건에서만 작동하는데 발전량을 임의로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인 핵발전과 날씨 등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불규칙한 '간헐성' 전원인 재생에너지가 만나면 전력망 불안정이 커지고 심하면 대정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력수요가 급감하는 봄과 가을철에 전력망 불안정성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발전량을 임의로 조절하기 어려운 핵발전은 유연 운전(출력제어)이 가능하도록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한국형 핵발전은 설계부터 출력제어를 고려하지 않은 모델이고 신규 핵발전에 출력제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핵연료봉 안전성 훼손과 고장 위험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32년까지 핵발전소 발전 출력을 50%까지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전제로 핵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기술 개발이 되더라도 핵발전소 출력을 제어해 가동률이 낮아지면 핵발전소가 자랑하던 경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7년 초까지 신규 핵발전소 2기의 부지 선정 및 예정 구역 고시를 마치고 2030년대 초 건설 허가를 거쳐 2038년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김 장관은 "부지 공모에 한두 달 걸리고, 확정하는 데 석 달 걸린다"며 일정에 차질이 없을 거라 밝혔지만 부지를 선정하는 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토가 좁고 핵발전소 밀집도가 높은 한국의 특성상 주민 협의를 통한 부지 선정 절차를 단기간에 끝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동해안에는 부산(6기), 울산(4기), 경주(6기), 울진(10기)에 핵발전소 26기(건설 중, 가동중지 포함)가 집중돼 세계 최고 수준의 핵발전소 밀집도를 나타내고 있다. 신규 부지를 선정해야 하지만 핵발전소 운영과 핵폐기물의 안전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주민들의 반대가 거셀 수밖에 없다.
신규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것과 내가 사는 지역에 핵발전소를 짓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에 핵발전소 예정 후보지로 지정된 바 있는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에서도 당시 반대 여론이 각각 91.7%와 84.9%에 달했다. 또한 이들 지역은 각각 양산단층과 근덕단층이 존재해 지진의 위험성이 있어 핵발전소 부지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만약 동해안 지역에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되더라도 전력망이 포화 상태여서 발전시설이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경북 울진에서 신한울 1, 2호기가 본격 가동된 2024년 전후 전력망이 연결된 강원도 삼척과 강릉의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이 10%대로 급감했다.
김 장관은 "12차 전기본에서는 AI와 전기차 확산에 따른 전기화 수요를 예측하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믹스와 분산형 전력망 계획을 과학적·객관적으로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의 전력 사용량이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송전선로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는 점을 과학적·객관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산단을 조성하는 계획에는 최소 10GW에 달하는 전력 용량이 필요하다. 10GW는 핵발전소 10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이처럼 막대한 전력을 감당할 발전시설이 부족하다. 결국 비수도권의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대규모 송전망 건설이 불가피하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는 정부가 '지산지소'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전력수요가 집중되는 AI 산업과 반도체 산단 등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발전소는 다시 비수도권 지역에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모순된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핵발전이 필요하다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전력자립률(특정 지역의 전력 생산량을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로, 100% 이상이면 자급자족 가능)은 2024년 기준 65.8%로, 수도권 외부에서 34.2%의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다. 외부에서 끌어다 쓰는 전기소비량은 약 75TWh(테라와트시)로, 충남권(대전, 충남)과 경북권(대구, 경북)의 각각 1년 전체 전력소비량인 약 60TWh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충남권과 경북권의 전력자립률은 각각 172.6%와 169.8%에 달한다. 충남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와 경북 지역의 핵발전소에서 생산해서 쓰고 남은 전기를 수도권에서 송전선로를 통해 끌어다 쓰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이 전국 전력 소비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전력 생산은 24%만 감당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그렇다면, 신규 핵발전소 2기(한 기당 1.4GW, 총 2.8GW)를 수도권에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한다면 정부의 지산지소 원칙과 분산형 전력망 계획에 부합할 수 있지 않을까.
수도권에 신규 핵발전소 2기가 건설돼 가동되면(가동률 80% 전제), 수도권의 전력자립률은 2024년 전력소비량 기준으로 74.7%까지 높아진다. 신규 핵발전소 2기만으로는 전력자립률 100%에 못 미친다. 4기가 되면 약 83.7%, 6기가 되면 92.6%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도권에 신규 핵발전소 8기가 건설되면 드디어 전력자립률이 101.5%로 전력자립을 이룰 수 있다. 소형모듈핵발전(300MW급) 기준으로는 37기를 건설하면 수도권 전력자립이 가능하다. 물론 이 전제는 2024년 수도권의 전력소비량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향후 반도체 산단 등의 요인으로 전력소비량이 급증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도권의 신재생자립률(특정 지역의 신재생 전력 생산량을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이 3.6%에 그치는 만큼 재생에너지를 정부의 계획대로 확대한다면 수도권에서 전력자립이 가능하면서도 적정한 에너지믹스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출력제어 기술을 탑재한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핵발전, 기존 수도권에서 가동 중인 LNG발전소와 재생에너지를 적절히 조합해 운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한 수도권에 늘어난 신규 핵발전소만큼 다른 지역의 노후 핵발전소를 점진적으로 폐쇄한다면 전력소비와 생산, 송전을 둘러싼 지역 갈등과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도권 내에 신규 핵발전소 부지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론화를 통해 수도권에 핵발전소와 소형모듈핵발전의 필요성과 안전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논의해 나간다면 그 자체가 한국의 에너지정책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6월 지방선거가 부담된다면 그 이후에라도 좋다. 정부가 제12차 전기본 수립을 좀 더 미루더라도 국민과 함께 핵발전소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정책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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