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제3차 상법 개정안 관련 긴급좌담회에서 “(개정 과정에서) 경영권 방어 장치가 함께 도입된다는 건 이사회 중심 경영과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사실상 백지화하는 것”이라며 “코스피 5000 국면에서 거버넌스 개혁이 후퇴하면 주가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번 좌담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재계 일각의 우려를 반박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근 법무부가 국내 분산소유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취약성을 언급하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함께 포이즌필·차등의결권·의무공개매수 등 대체 수단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는 점도 논의 배경으로 거론됐다.
◇“경영권 방어 장치보다 충실의무 선행돼야”
이 회장은 우선 자사주를 ‘원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역사적으로 맞지 않다고 짚었다. 2011년 상법 개정(2012년 시행) 이후 자사주 취득 목적 제한이 사실상 완화되고 처분 의무가 약화되면서, 자사주 장기 보유가 가능해진 결과가 현재 관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관행은 제도 설계의 결과이지 보편적 원칙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자사주 소각 부작용론에 대해 “재무적 사실관계와 다소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기주식은 취득 시점에 이미 자기자본에서 차감되는 만큼, 소각 자체가 현금흐름이나 재무건전성을 직접 훼손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소각이 투자자 신뢰 회복과 밸류에이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좌담회에선 ‘경영권’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경영은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인데, ‘경영권 방어’ 프레임은 특정 지배주주의 사익 보호로 기울 가능성을 내포한다”며 “경영권이라는 말 자체도 ‘세모난 네모’처럼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포이즌필에 대해서도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방어권’이 아니라 ‘엄격한 사법심사를 전제로 한 예외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선결 조건 없는 도입 시도는 위험하다고 보고, 도입 논의에 앞서 △충실의무 관련 판례 축적 △이사회 독립성 확보 △이해관계 지배주주의 의결권 통제 장치가 우선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 해석을 둘러싼 반박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유럽이 이해충돌 우려로 방어 수단 허용에 신중하고, 미국 역시 허용 자체보다 이사회 충실의무·비례성·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법원 심사를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포이즌필의 출발점도 ‘management right(경영권)’가 아니라 ‘shareholder rights plan(주주권리계획)’이라는 주장이다.
◇“중복상장 자체가 차등의결권 제도…韓 기업엔 경쟁 필요”
국내 시장 구조를 고려하면 제도 필요성이 과장됐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코스피200 기업 다수가 지배주주 체제에 놓여 있고 평균 지분율도 높은 편이어서, 주주가 광범위하게 분산된 미국·영국·일본의 제도 논리를 한국에 그대로 대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 전제가 다른 만큼 제도 ‘껍데기’만 가져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취지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한국 기업의 중복상장 구조가 이미 지배주주에게 차등의결권과 유사한 효과를 주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중복상장을 통해 지배주주의 지배력 레버리지 만들기를 허용해 줌으로써, 한국엔 이미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 제도에 대해선 “주주 보호장치”라며 “지배주주 변경이나 지배력 급변은 일반주주에게도 중대한 사안인 만큼, 소액주주에게 합리적인 매도 기회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제도가 누군가의 신규 취득 자체를 과도하게 차단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경우, 경영권 강화 장치로 변질돼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아울러 이 대표는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경영권 보호’가 아니라 ‘경쟁과 규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지율 10%인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 안정을 이유로 세습형 통치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자고 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경영 실패에도 박탈 위험이 없다면 경영진이 주주를 두려워하며 더 책임 있게 행동할 유인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