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코오롱글로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직원이 고용노동부 재조사와 산업재해 조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유급병가나 유급휴가 등의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회사의 1차 조사에서 일부 괴롭힘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조사 기간 중 피해자가 무급 상태에 놓이고 분리·고립 근무 방안까지 검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신고자 보호가 작동하지 않는 기업문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 재조사·산재 조사 중에도 “유급병가 불가”
두 아이를 양육 중인 여성 직원 A씨는 동료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증언자로 협조한 이후 반복적인 업무 압박과 불리한 대우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본인 역시 괴롭힘 피해를 신고했고 회사의 1차 조사에서 일부 사실이 인정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고용노동부를 통한 직장 내 괴롭힘 2차 재조사와 산업재해 조사가 동시에 개시됐음에도 A씨는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고도 유급병가나 유급휴가를 부여받지 못했다. 회사는 무급휴가 외 선택지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근을 전제로 제시된 복귀 방안 역시 논란이 됐다. 기존 근무지와 분리해 다른 층에 단독 배치하는 방식이 검토·통보되면서 피해자 보호라기보다 조사 기간 중 조직적 고립을 초래하는 조치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A씨는 임신 중 해당 사건과 맞물린 극심한 스트레스로 조기 양수 파열을 두 차례 겪었고 출산 이후에도 충분한 회복과 배려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임신·출산·육아기 노동자의 경우 보호 공백은 곧 퇴사 압박과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저출생 대응을 국가 핵심 과제로 삼고 육아휴직 급여 인상,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유연근무제 활성화 등 제도를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임신과 문제 제기’가 동시에 부담이 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출산 지원금과 가족친화 제도를 확대하는 흐름과 달리 조사 기간 중 최소한의 보호조차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번 사례는 출산 장려 정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하도급 분쟁에서도 ‘책임 최소화’ 대응
이 같은 대응 방식은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019년 코오롱글로벌은 호텔 공사 과정에서 준공청소를 맡은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 법적 분쟁에 휘말린 바 있다.
도급업체가 회생 절차에 들어가자 하도급업체는 원청인 코오롱글로벌에 직접 지급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이중지급 위험'을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다. 결국 법원은 하도급업체의 손을 들어주며 코오롱글로벌에 약 448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업계에서는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책임 이행을 최대한 미루는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도 조사 중 최소한의 보호 조치도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또한 작년에는 코오롱글로벌이 시공한 대전 선화동 발파 공사 현장에서 소음·진동·안전 문제를 둘러싼 주민 민원이 폭발했다. 주민들은 사전 설명과 안전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집단 항의에 나섰고 공사 중단 요구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공사 일정과 비용을 우선시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며 “현장 안전과 주민 보호보다 공사 강행이 앞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 계열사에서도 문제 이어져...피해자 보호 우선해야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생명과학에서도 2020년대 중반 최고경영진의 폭언·갑질을 둘러싼 내부 직원 제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회식 자리에서의 상습적인 폭언과 술자리 강요,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원색적 비난 등이 문제로 지적되며 위계 중심의 조직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과거 하도급 분쟁, 안전 민원, 계열사 조직문화 논란을 종합하면 개별 사건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선제적으로 지기보다 외부 압력이나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버티는 대응 방식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직원, 하청업체, 지역 주민 등 대상만 달라졌을 뿐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의사결정 구조는 유사하다”며 “이런 문화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 역시 보호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은 전사적으로 윤리경영과 인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제도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조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 보호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직장 내 괴롭힘 제도에 대한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사건 발생 시 조사 기간 중 유급 휴가 부여, 즉각적인 분리 조치, 인사 평가상 불이익 금지 등을 사내 규정에 명시해 의무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제 제기 여부와 무관하게 ‘조사 중 보호’를 기본 원칙으로 삼지 않으면 인재 유출과 기업 평판 리스크가 더 커진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쟁점은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를 넘어 문제를 제기한 순간 기업이 어떤 보호 조치를 선택했는지에 있다”며 “신고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윤리경영과 인권 보호는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은 한 직원의 개인적 고통을 넘어 대기업 조직 안에서 ‘신고하면 보호받는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는 사례다. 저출생 대응과 인권 경영이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코오롱뿐 아니라 재계 전반에 던져진 과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합병 이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현재 노동청 진정에 따라 재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외부 노무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 적합한 절차를 밟고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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