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스노보드 국가대표 김상겸은 학생 신분을 벗자마자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설상 불모지 한국에 첫 스노보드 실업팀이 창설될 때까지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상겸은 묵묵했고 꾸준했습니다. 소치, 평창, 베이징을 거쳐 올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밀라노 올림픽)까지 출전 가능한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20대 초반부터 계속된 도전은 37세에 드디어 빛을 발했습니다.
김상겸은 8일(현지시각) 밀라노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2등을 차지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벤야민 카를과의 선두 경쟁에서 0.19초 차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그의 은메달은 값졌습니다.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400번째 메달이자, 김상겸의 선수 인생 첫 올림픽 메달이었거든요. 놀라운 건 올림픽이 네 번 치러지는 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은 그의 열정 뿐이 아닙니다. 종목의 특성도 있지만, 대개 스포츠 선수들은 나이가 들수록 기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김상겸은 에이징 커브는 커녕 오히려 더 나아진 실력으로 가장 큰 무대에서 은메달을 수확했습니다.
한국 알파인을 세계로 알린 그는 꿈에 그리던 포디움에 올라 큰절을 했습니다. "마침내 해냈다"며 벅찬 심경을 토한 김상겸은 가족 이야기에 끝내 눈물을 흘렸는데요. 그는 "기다려줘서 고맙다. 가족들에게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다"며 "나를 믿고 묵묵히 응원해 준 아내가 오늘 메달의 1등 공신"이라고 밝혔습니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에 선수 자신만큼 힘들었을 아내에 대한 깊은 감사였어요. 또 김상겸은 "스노보드는 제 인생"이라며 "앞으로 헤쳐 나갈 것이 많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노보드 국가대표 김상겸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실수는 있었지만, 세워 둔 전략을 믿고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한 결과가 큰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깜짝 메달'이라는 수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받을 만한 사람이 받은 메달이죠. 경기 이후 김상겸은 인스타그램에 "처음으로 이렇게 큰 사랑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경황이 없을 정도로 너무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며 "보내주신 모든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응원해 준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어요. 그러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드리고 싶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김상겸이 은메달의 모든 영광을 돌린 아내도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막 딴 은메달을 보여 주며 눈물을 흘리는 남편과의 영상 통화를 공개했어요. 영상과 함께 "결혼을 결심했던 평창 올림픽 때, 16강에서 떨어진 그와 영상통화 너머로 아쉬운 눈물을 나눴다"며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땐 그토록 바라던 메달을 목에 걸어주지 못해 슬퍼하던 모습이 참 마음 아팠다"라며 지난날을 돌아봤습니다. 밀라노 올림픽 관련 다큐에서 "꼭 메달을 따서 아내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싶다"고 한 김상겸의 약속이 결국 지켜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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