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입원하면 쉬려나' 말조심해야 하는 이유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이수미 더봄] '입원하면 쉬려나' 말조심해야 하는 이유

여성경제신문 2026-02-09 13:00:00 신고

손주는 자라고 할미는 늙으며 어느 시점부터인가 균형이 무너졌다. 갑과 을이 바뀐 것이다. 갑으로서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데리고 다니길 몇 년 하니 을이었던 손주는 머리가 크고 속이 차기 시작했다. 7살 무렵인 듯싶다. 젊은 엄마들도 아이가 7살이 되면서 ‘다른 아이’가 됐다고 하던데 우리 집 손주도 자기주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안돼?” “좀 이따가”를 하루 100번쯤 했다. “싫어!” “안 해!”보다는 좀 낫지만 원래 손주 이기는 할머니는 없는 법. 모든 상황이 손주가 원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신기한 것은 할머니의 이런 약한 마음을 손주가 너무나 잘 안다는 것. 우리 집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는 할아버지, 그 바로 위가 할머니인 나, 그 위로 손주가 있게 됐다.

알면서도 하루에 수십 번 파워 게임이 벌어진다.
“왜 이러지? 안 그러더니 이제 말을 안 듣네?”
묻는 내가 잘못이다.
“알겠어. 좀 있다가···” 하면 끝이다.

그런 실랑이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 할미를 지치게 한다. ‘우리 딸들은 안 이랬는데···’를 되뇌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한번 넘어간 주도권은 다시 넘어오지 않는다. 올 때 반갑고 갈 때 더 반가운 것이 손주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소소한 전투를 매일 반복했다. 병원에 입원한 아줌마들이 며칠만 더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는 말을 이해 못 했는데 전투의 상흔이 몸에 쌓여가자 ‘입원이라도 하면 좀 쉬려나···.’ 내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무책임한 회피의 마음이 들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말은 씨가 되나보다. 어느 날 운동을 다녀왔는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운동이 과했나 싶어 진통제를 먹으며 쉬고 있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저녁도 못 먹고 잠을 청해 보지만 아픈 종류가 조금 이상했다. 다음날은 사위가 등하교를 시키는 날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상한 불안감이 밀려온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아이스 커피가 간절해 링거대를 밀며 카페 앞을 서성이던 할매 환자가 저랍니다. /이수미
아이스 커피가 간절해 링거대를 밀며 카페 앞을 서성이던 할매 환자가 저랍니다. /이수미

결국 새벽 0시에 응급실에서 맹장염 진단을 받고 다음 날 아침 긴급수술을 하고 입원을 했다. 수술을 했으니 통증은 사라졌지만 그 이후 3일 동안 물도 못 마시며 꼬부랑 할머니같이 걸어 다녔다. 지방에 사시는 손주의 할머니가 부랴부랴 올라오시고 등하교부터 학원까지 낯선 일을 일주일 해주신 덕에 누워 있을 수 있었다.

링거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는 입원실에 누워 있자니 ‘입원하면 쉬려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웃음도 났다. 말 안 듣던 손주는 할미의 수술과 환자복을 보고 살짝 놀란 듯 말 잘 들을 것 같은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그때뿐이었다.

누워있어도 맡은 일을 남에게 미뤄놓은 상태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왠지 수술 부위도 잘 아물지를 않아서 한 달쯤은 병원을 다닌 것 같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반강제 휴식을 취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말이 씨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쉬는 것의 주체는 마음이고 몸이 아님을 이 나이에도 또 깨닫는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출판사 등에서 오랜 시간 취재 및 편집 업무를 담당하며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했다. 은퇴 후 손주의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서 겪는 현실적인 고충과 그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을 담은 <할머니의 황혼육아> 를 집필하고 있다.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