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전체 465석 중 3분의 2 이상인 316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개헌 발의선을 확보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조기 총선 승부수가 자민당의 '역대급 승리'라는 결과로 돌아오면서 그가 추진하는 강경 보수 성향 안보 정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19일 중의원(하원) 해산을 발표하면서 3대 안보 문서 조기 개정, 국가정보국 창설, 스파이 방지법 제정, 헌법 개정 등을 언급했다.
특히, 이번 선거로 자민당 단독으로 개헌안 발의가 가능해진만큼 평화 헌법의 핵심인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해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자민당, 465석 중 316석 차지하며 개헌선 확보…의석 118석 증가
反 자민 '중도개혁 연합' 167석에서 49석으로 줄어
9일 교도통신과 NHK에 따르면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316석을 차지했다. 기존 의석수 198석과 비교하면 118석이나 늘었다.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는 36석을 얻었고, 제2야당 국민민주당은 28석, 우익 성향 야당 참정당은 14석을 확보했다. 인공지능(AI) 엔지니어 안노 다카히로가 세운 신생 정당 팀미라이는 11석을 차지했다.
반면 기존 의석수가 167석이었던 최대 야당 '중도개혁 연합'은 49석을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종전 제1야당 입헌민주당과 제3야당 공명당이 총선 직전 결성한 중도개혁 연합은 지역구 289곳 중 단 7곳에서만 승리했다.
이전까지 자민당이 얻은 가장 많은 의석은 1986년 총선에서 얻은 304석이었다. 아베 전 총리도 2012년 재집권 이후 총선에서 매번 자민당 대승을 주도했지만 당시 자민당이 300석을 넘기지는 못했다.
일본 언론은 단일 정당이 중의원(하원)에서 의석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것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자민당 압승의 요인으로는 젊은 층까지 파고든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와 60% 안팎을 기록 중인 높은 내각 지지율이 꼽힌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23일 중의원을 해산했을 당시에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으나 그는 전국 유세를 다니며 '강한 일본'을 호소해 판세를 자민당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다카이치, 방위력 강화·스파이 방지법 제정·개헌 등 추진 관측…일단 '적극재정' 강조
조기총선이라는 다카이치 총리의 '승부수'가 통하면서 그가 추진하는 강경 보수 성향 안보 정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19일 중의원(하원) 해산 의사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정책 실현을 위한 기어를 한 단계 올리고자 한다"며 3대 안보 문서 조기 개정, 국가정보국 창설, 스파이 방지법 제정, 헌법 개정 등을 언급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방위력 강화를 위해 3대 안보 문서를 연내에 개정하고, 무기 수출과 관련된 일부 규제를 올해 폐지하기로 했다.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으로도 평가받는 국가정보국 신설과 정보 수집 능력 강화, 국가 감시 강화가 우려되는 스파이 방지법 제정도 다카이치 총리의 관심이 큰 정책으로 꼽힌다.
일장기를 악의적으로 훼손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일본 국장(國章) 훼손죄' 신설도 보수 성향 안보 정책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일본 내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 등을 규정한 헌법 9조 개정을 추진해 일본을 사실상의 '전쟁 가능 국가'로 변모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총선 이후 자민당과 유신회, 국민민주당, 참정당 등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세력의 의석수 합계는 개헌안 발의선을 훨씬 웃도는 395석이 됐다. 이들 정당의 기존 의석수는 261석이었다.
다만 자민당이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더라도 당장 개헌안을 발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뿐만 아니라 참의원에서도 3분의 2 이상 의원이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참의원은 여소야대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음 참의원 선거는 2028년 여름에 열릴 예정이다.
개헌을 주장해 온 자민당은 아베 정권 당시인 2017년 총선 때도 연립 공명당과 함께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했으나, 개헌안을 발의하지 못했다.
다만 당분간은 논쟁을 부를 수 있는 외교·안보 현안 보다 적극 재정을 골자로 하는 경제 정책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여당의 개헌안 발의선 확보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NHK에 출연했으나 개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꼭 심판받고 싶었던 것은 경제 재정 정책을 크게 전환하는 책임 있는 적극재정"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은 공약에서 책임 있는 적극재정 방침에 따라 대담하고 전략적인 '위기관리 투자'와 '성장 투자'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고용과 소득을 늘려 '강한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경제 안보,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 콘텐츠 산업 등에 자금을 투자해 경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총선대승 축하 "'힘 통한 평화' 의제 성공하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집권 자민당이 크게 승리하자 다카이치 총리에게 축하의 뜻을 전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서 "그녀는 매우 존경받고 인기 많은 리더"라면서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의 "압승"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총선을 치르기로 한 사나에의 대담하고 현명한 결정이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당신과 당신의 연합(자민당-일본유신회 연립여당)을 지지한 것은 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신의 보수적인 '힘을 통한 평화' 의제를 이행하는데 위대한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면서 "그런 열의를 갖고 투표한 훌륭한 일본 국민은 항상 나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총선을 앞두고 지난 5일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다카이치 총리를 공개 지지한 바 있다.
美언론 "中위협이 다카이치 도와…美에 희소식"
미국 언론들은 '중국 변수'가 다카이치 총리에게 정치적 호재가 됐다고 분석하면서 자민당의 압승은 미국에게 희소식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일본 여당의 대승에 대해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경우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게 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진실을 밝힌 다카이치에게 수출과 관광 등 제재로 벌을 주려했던 중국에게도 '공(功)'이 있다"며 "(일본에 대한) 중국의 괴롭힘은 대만, 호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역효과를 냈다"고 썼다.
이어 "다카이치는 자민당의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파벌 출신"이라며 "그녀는 방위지출 확대를 선호하는데, 그것은 중국의 광대한 군비 확장을 감안할 때 시급히 필요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최고의 소식은 자민당의 확고한 다수당 지위가 다카이치에게 권한을 갖고 통치할 재량을 부여한다는 점"이라며 "미국과 자유세계는 중국 공산당의 제국주의 야심에 맞선 동맹으로서 강하고 자신감있는 일본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도 사설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일본 총선 결과는 "중국이 주는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증가하는 각성을 반영한다"며 "일본인들은 다카이치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공격이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함으로써 중국의 시진핑에 정면으로 맞선 뒤 다카이치 주위에 결집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카이치의 성공은 미국을 위해 희소식이며, 미국은 그녀의 성공을 도울 수 있다"며 다카이치 총리의 일본 방위지출 확대, 공격용 군사역량 확대, 살상무기 수출금지 해제 등 매파적 안보정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총선 압승으로 일본 여당이 의회에서 힘있는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게 된 상황은 "다카이치가 2차대전 이후 일본 헌법에 들어가 있던 평화헌법 조문을 폐지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며 "그녀의 어젠다가 의회를 통과하면 일본은 중국에 맞서기 위한 더 많은 안보 부담을 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中관영매체 "다카이치, 도박서 승리했지만…화무백일홍"
반면, 중국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백일 붉은 꽃은 없다)을 언급하며 평가절하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SNS) 계정 뉴탄친(牛弹琴)은 9일 게시글에서 "예상대로 다카이치 총리가 도박에서 이겼다"면서도 "다카이치는 뛰어난 수완으로 석 달 만에 자신을 '왕훙(網紅·중국의 온라인 인플루언서) 총리'로 만들었지만, 화무백일홍"이라고 주장했다.
뉴탄친은 "유행과 트래픽을 과하게 좇다 보면 오히려 그에 역공당하기 쉽고, 한때의 영광은 순식간에 만인의 비난으로 바뀐다"면서 "우리는 그런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가 민생 회복을 위해 초대형 재정 부양책과 전례 없는 양적 완화에 나설 수 있고 관측하면서, 그를 영국 역사상 최단임(50일) 기록을 남기고 사임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와 견줬다.
뉴탄친은 "경제 정책은 외줄타기와 같아 자극과 안정 사이에 한 발만 균형을 잃어도 미지의 심연으로 떨어질 수 있다"라며 "알다시피 트러스 전 총리는 취임 후 대규모 감세 정책을 감행했지만 재정 위기를 초래해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다카이치는 어떻게 될까"라고 자문한 뒤 "시간이 답을 줄 것"이라고 적었다.
뉴탄친은 이번 선거에서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가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등의 개헌을 추진하고, 일본의 방위 지출 확대 등 '보통국가화'(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의 전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또한 "대만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은 더욱 도발적으로 나설 것이고, 중일 관계는 더욱 요동칠 것"이라며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것은, 한층 더 험악한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힘을 받으면서 양국 관계가 냉각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중화권 내에서 나오고 있다.
시사평론가 정하오는 홍콩 봉황위성TV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중일 관계는 '나쁨'과 '최악' 사이를 오가게 될 것"이라며 "단기간 내에 변화나 개선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이 대만 관련 발언 철회와 사과를 계속해서 요구한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일 관계는 이 문제에서 그대로 막혀 있게 되고, 중국이 양보하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렵지만 현재로서 중국은 하루도 양보한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日 "다카이치 정치 기반 공고…양호한 한일관계 지속될 것"
일본 현지에서는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 기반이 공고해져 한일관계는 협력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국내 정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무리해서 우익 성향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한일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가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에 파견하는 정부 인사의 격을 높여 각료를 보내는 방안과 관련해 "한일관계 안정을 중시한다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도 "총선 이후 중일 관계,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자세가 바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국제 환경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관계 기조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의 대승 이후 보수적 외교·안보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낸다면 한국이 경계감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다카이치 내각이 3대 안보 문서 조기 개정, 방위비(방위 예산) 증액, 방위 장비 수출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은 이에 대해 경계하며 불안해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들 정책의 필요성과 국제 정세 등을 충분하고 정중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다카이치 총리가 한국과 국내 반대 세력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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