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꼬리표를 떼고 결제와 송금, 자산 운용의 판을 흔드는 '금융 혈관'으로 자리잡았다. 한국도 제도권 편입을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어떻게 쓰고 관리할지 구체적인 밑그림은 여전히 희미하다. 여성경제신문 연중기획 [원화S코인]은 지각 변동과도 같은 금융 인프라의 전환기를 맞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다각도로 조망한다. 1부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물 경제와 산업 전반에 가져올 변화를 추적하고 제도적 빈틈을 메우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2부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전문가 진단을 통해 실제 도입 단계에서 마주할 쟁점들을 분석한다. 본 기획이 한국형 디지털 통화 체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송금 수단으로 안착하려면 기술을 넘어 월급과 임대료가 오가는 금융거래 관행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은행과 비은행의 역할을 정립하되 이를 ‘지급수단’으로 정의하는 토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여성경제신문은 차현진 호서대학교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를 만나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모델의 실제 도입 단계에서 마주할 현실적인 쟁점에 대해 살펴봤다. 차 교수는 중앙은행과 금융시장, 지급결제 실무를 두루 경험한 금융·통화 분야 전문가다. 1985년부터 한국은행에서 37년간 근무하며 조사국과 금융시장국, 자금부 등을 거쳐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에서도 근무했다. 지난 2023년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가을부터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이 안착하려면 기술적 완성도보다 저축·송금·결제 등 기존의 금융 관행을 바꾸는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발행 주체와 관련해서는 환전에 강점이 있는 은행과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영향력을 키울 비은행의 역할이 다를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두 구조 모두 발행·유통·상환 기능이 분리되는 방향의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한 은행과 신산업을 어정쩡하게 절충하는 방식보다는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준비자산의 중앙은행 예치 등 지급수단에 걸맞은 안전장치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송금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기존 금융제도와 가장 크게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일지.
두 가지 질문으로 불 수 있다. 첫째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과 송금의 수단이냐 하는 문제다. 우선 한국 금융감독 당국이 과연 그렇게 보고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지급과 송금수단이라면 모든 상거래와 관련이 있으므로 상법을 다루는 법무부가 관장해야 한다. 어음법, 수표법, 부정수표단속법이 그렇다. 미국도 각종 충전형 전자지급수단은 전자자금이체법(EFT Act)으로 다스린다. 그리고 그 법의 주무부처는 연준에 소속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다. 지급수단이 연준의 발권과 통화정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지급과 송금수단은 한국은행법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가 맡아야 하지만 한국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현재 금융위원회가 검토한다. 스테이블코인을 지급과 송금수단을 넘어서 금융상품으로 본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기존 금융제도와 가장 크게 충돌하는 부분은 단연코 ‘이용자 보호’다. 지급수단의 보호는 일반 금융상품 보호보다 훨씬 중요하다. 지급수단의 신뢰가 무너지면 상거래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칫 물물교환 경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 예금은 예금보험을 통해서, 기존의 각종 전자지급수단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우선변제를 통해서 보호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이용자 보호가 실무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 자기앞수표나 CD처럼 실소유자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고민해야 하는 숙제다.
—개인과 기업의 금융 이용 방식에서 가장 크게 달라질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인과관계를 거꾸로 생각해 보자. 가계와 기업이 저축하고, 송금하고, 매매하고, 환전하는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송금수단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이미 신용카드와 계좌이체, 간편결제 등이 우리 일상생활에 충분히 침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경제 주체들이 금융관행을 바꿨다고 가정해 보자. 월급와 임대료 등으로 받은 수입을 즉각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서 보유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사거나 송금할 때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송금수단으로 정착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금융거래 관행이 달라지면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송금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경제주체들이 관행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캐나다에서는 1950년대부터 CT(캐나디언 타이어) 사가 발행해 온 종이 쿠폰이 현찰과 똑같이 쓰였다. 그 쿠폰의 별명이 '웃긴 돈(funny money)'인데, 전 국민이 지갑 안에 웃긴 돈 2~3장씩을 갖고 다녔다. 그래서 21세기 들어서 그 종이 쿠폰을 없애려고 하니까 이미 그것을 지급수단으로 쓰고 있는 국민들이 반대했다. 사람들의 관행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지 세상이 바뀌면 관행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급수단은 그렇다.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제한할지 비은행에도 허용할지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타날 수 있을지. 또한 발행·유통·상환 기능을 통합 또는 분리하는 구조 중 더 적합하다고 보는 방향은.
한국은 몇 년 전 머지 포인트, 티몬·위메프 사태를 겪었고 유럽에서도 와이어카드의 파산으로 금융시장 충격이 컸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은행이 발행하면 조금 더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은행은 기득권을 가진 조직이므로 혁신 잠재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스테이블코인은 화폐나 자기앞수표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므로 발행, 유통, 상환이 분리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걸 하나로 묶는다면 은행의 무통장 예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은행 중심 발행과 비은행 중심 발행에 따라 체감되는 변화는 어떻게 다를까.
은행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아무래도 환전에 경쟁력이 있다고 보인다. 지금도 해외로 송금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환전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나. 은행계 스테이블코인은 환전 수수료와 시간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은 전자상거래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현재는 전자상거래에 적용되는 마일리지 서비스를 신용카드사와 판매자(플랫폼 입주기업)가 제공한다. 그런데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이 특정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전용 지급수단으로 지정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가 마일리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전자상거래 분야 시장지배력이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은행계 스테이블코인은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그것을 좇아가기 어렵다.
—빅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나 유통에 참여할 경우 기존 금융시장 구조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아울러 빅테크 기업이 개인의 신용 등 민감 정보에 접근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구체적인 부작용과 파급효과는 무엇일지.
기존 금융시장 구조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지만 그것을 ‘부작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은 정확히 말해서 이슬람 뱅킹으로의 접근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금융산업은 지배구조 면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구분이 비교적 느슨하고 영업 형태 면에서 은행업과 증권업의 경계가 없는 겸업주의를 따르고 있다. 지금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을 허용하면서 전 세계가 정확히 그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의 부작용을 찾을 것인지 뉴노멀로 받아들일 것인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금융업 역사를 오래 연구한 입장에선 이슬람 뱅킹으로의 접근을 중립적으로 본다. 다만 법과 제도를 만들 때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제도권에서는 가장 먼저 무엇을 고려해야하나.
굉장히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질문이다. 흔히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법률의 대표로서 미국 지니어스법, 유럽 MiCA, 일본 자금결제법을 예로 든다. 그중 가장 나중에 제정된 미국 법이 이 질문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참고가 된다고 보인다.
자본시장이 잘 발달한 미국에서는 법조계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유가증권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되면 은행법, 증권법 등이 뒤엉켜서 감독이나 이용자 보호 면에서 큰 혼선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지니어스법은 분명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유가증권이 아닌 지급수단으로 본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격을 심사하는 위원회에 재무부, 연준,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참가하고 증권위원회(SEC)가 배제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한국의 언론과 업계가 그런 점을 놓치고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점이다. 유럽은 겸업주의(universal banking)을 취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급수단과 유가증권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만들 때 지급수단과 유가증권의 구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된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실제로 뒷받침하는 돈, 즉 준비자산의 구성과 관리 방식이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도를 설계할 때 중요하게 봐야 할 요소는 무엇일지.
그것이 스테이블코인의 성패가 갈린 제일 중요한 주제다. 우선 고객 재산의 분리 보관(safeguarding)이 기본이다. 전자화폐처럼 제3의 기관에 보증보험을 의무화하는 방법은 문제만 복잡하게 만들고 비용만 늘린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준비자산의 구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국채를 보유하게 하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처럼 파산할 수 있다. 얼마 전 영란은행이 제한한 것처럼 스테이블코인 발행대금을 중앙은행에 의무 예치하는 방법이 가장 깔끔하고 안전할 수 있다.
—그 준비자산을 중앙은행, 시중은행, 또는 다른 방식으로 보관할 때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다고 보는지.
이용자 보호의 우수성을 따진다면 당연히 중앙은행, 시중은행, 증권사 순이다.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는 준비자산 운용에서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한다. 자산운용 수익은 발행업자가 독식하므로 당연히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을 억제하려면 중앙은행이나 시중은행에 예탁 또는 신탁하는 것이 안전하다.
—상환 지연이나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마련돼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무엇일까.
그것 역시 고객 자산의 분리 보관, 안전 위주의 자산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환 지연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가짜뉴스나 유동성 문제 등으로 패닉이 생겨서 갑자기 인출 러시가 생기면 일정 기간 인출을 금지하거나 높은 인출 수수료를 부과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느닷없이 파산하는 것보다는 이용자가 약간 불편한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평소에 고객 자산의 분리 보관, 안전 위주의 자산 운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해외 주요국과 스테이블코인 논의와 비교했을 때 한국 제도 논의에서 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법을 다루시는 분이나 정책당국과 만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은 조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포르 등이 이미 만든 스테이블코인 법률은 모두 결함과 한계가 있다. 전거지감(前車之鑑) 즉 앞 사람이 남기고 간 수레바퀴 자국을 보고 잘못을 고치는 자세가 현명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어정쩡한 현실타협을 지양하고, 둘째 공평무사를 추구하며, 셋째 대외 경제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편리하다’, ‘국제 경쟁에서 뒤쳐지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낭만적 생각으로는 금융안정과 거시경제에 심각한 독이 될 수 있다.
먼저 현실타협 문제와 관련해 짚어보면 유럽과 일본의 실수를 예로 들 수 있다. 은행업과 신산업의 어정쩡한 절충과 공존을 도모하는 바람에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분할되고 비효율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미국은 상업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금지하고 오직 자회사 설립을 통해서만 허용했다. 비유하자면 새 길을 만들 때 일단 도로부터 만들고 줄을 긋느냐, 중앙분리대를 함께 만드느냐의 차이라고 하겠다. 어떤 길이 더 빠르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겠는가?
‘공평무사’ 추구는, 빅테크는 되고 기존 재벌 그룹은 곤란하다는 식의 접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 경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은 지난해 수출 7000억 달러를 넘었지만 환율은 여전히 불안하다. 기축통화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은 수출과 생산 면에서 세계 1위다. 그래서 약간의 충격에도 환율이 출렁거린다. 그런 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거래가 거시경제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독할 정도의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슬람 뱅킹(Islamic Banking)=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이자 수취를 금지하고 운영되는 금융 방식. 돈에 이자를 붙여 빌려주는 대신 투자·거래를 통해 발생한 이익과 손실을 금융기관과 이용자가 함께 나누는 구조. 모든 금융 거래는 실물 자산이나 실제 사업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도박·주류·무기 등 율법상 금지된 산업에는 투자할 수 없다.
☞준비자산(Reserve Asset)=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실제로 뒷받침하기 위해 발행사가 보유하는 자산이다. 현금, 중앙은행 예치금, 단기 국채 등이 해당하며 구성과 관리 방식이 신뢰도를 좌우한다.
☞지급수단(Payment Instrument)=상품·서비스 거래에서 대금 지급에 사용되는 수단이다. 현금, 수표, 전자지급수단 등이 포함되며 신뢰 붕괴 시 상거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고객자산 분리보관(Safeguarding)=이용자의 자산을 발행사 고유 재산과 분리해 보관하는 제도다. 발행사 파산 시에도 이용자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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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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