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의 한 대단지 A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 강 모(58)씨는 최근 단지 내에서 논란이 된 ‘난방비 0원 가구’를 두고 ‘무임승차’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난방비를 줄이려고 환기조차 최소화했는데 정작 이웃의 누군가는 난방을 하고도 요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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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A아파트가 지난해 12월분 난방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난방비가 0원으로 집계된 가구는 총 134세대로 전체 세대의 약 5%에 달했다. 난방비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장기 부재나 빈집인 경우도 있지만 계량기 노후화로 인한 기계적 결함이나 고의적인 계량기 조작·훼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중앙 및 지역난방 아파트의 경우 특정 세대의 난방비가 ‘0원’일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다른 세대에 전가한다는 데 있다. 중앙·지역난방 방식의 아파트는 단지 전체에 공급된 총 열량에서 각 가구의 계량기에 찍힌 사용량을 뺀 나머지를 ‘공동 난방비’로 분류한다. 계량기가 멈춘 집의 사용량을 모든 입주 세대가 ‘N분의 1’로 나눠 부담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발간된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거시설 중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중앙 및 지역난방 비중은 17.1%(지역 14.6%, 중앙 2.5%)에 달했다.
계량기 결함으로 난방비가 부과되지 않더라도 입주민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리비 고지서에는 ‘세대 난방비’와 ‘공용 난방비’ 항목이 구분·표시되고 있어 난방을 이용했는데 난방비가 0원이라면 세대 구성원이 이를 인지할 수 있어서다. 실제 A아파트에 15년째 거주한 이 모(62)씨는 “수리가 귀찮거나 요금을 아끼려 어물쩍 넘어가길 바랐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성실하게 요금을 내온 입주민들 사이에서 “내 관리비로 이웃집 난방을 때준 꼴”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난방비 0원 논란은 매년 되풀이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이데일리가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024년) 동절기(매년 11월~이듬해 2월) 동안 전국에서 난방비가 0원으로 기록된 세대는 총 96만 8064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계량기 고장으로 판명된 사례가 12만 1280세대였으며, 계량기 봉인을 훼손하는 등 고의 조작이 적발된 경우도 155건 있었다. 적발되지 않은 은밀한 훼손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형사 고발 같은 강력한 조치는 어렵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A아파트 관계자는 “고의 훼손이 의심되는 세대도 있었지만 계량기에 지문이 남아 있는 등 명백한 직접 증거가 없으면 입주민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본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주민들이 방문 조사를 거부하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입주민의 자발적인 신고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 아파트는 계량기 고장이 확인되면 그동안 내지 않은 요금을 ‘이웃 가구의 평균치’나 ‘지난해 사용량’을 기준으로 소급해 부과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에너지분야 공공기관 관계자는 “당장은 0원 고지서가 이득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 적발되면 오히려 실제 사용량보다 더 많은 요금을 한꺼번에 물게 될 수 있다”며 “난방을 조금이라도 썼는데 0원이 나왔다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송주열 아파트 비리척결운동본부 회장은 “관리사무소는 동절기 전후로 계량기 작동 여부를 선제적으로 전수 조사하는 게 좋다”며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아파트가 난방비를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계량기 교체주기를 준수하는지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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