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료기기를 별도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의료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제도가 시행되면서 인공지능(AI) 의료기기 산업이 변곡점을 맞았다. 시장 문턱이 낮아지며 K-AI 의료기기산업 외형과 경쟁력 확대가 예상되지만 안전성 검증과 책임 체계를 둘러싼 논란은 숙제로 남아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 즉시진입 적용 의료기기 199개 품목 가운데 113개가 AI 기반 독립형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디지털의료기기다. 관련 업계는 'AI 의료기기 시장 문이 열렸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상용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연구개발(R&D)과 외부 투자 유입도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박창민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장(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이번 제도는 의료기기 분야에서 미국·중국 등 경쟁국이 빠르게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AI 기술 적용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조치"라며 "환자와 의료인의 혁신 기술 접근성을 높이고, 경영난을 겪는 국내 의료 AI 기업에도 숨통을 터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도 기대감이 감지된다. 의료기기업계 관계자는 "절차 단축으로 신규 진입 환경이 개선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허가 단계가 간소해진 만큼 기업의 심사 준비 부담은 오히려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심사 기간이 줄어든 만큼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기준은 더 높아질 것"이라며 "제도 변화가 기회이자 압력으로 동시에 작용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AI 의료기기를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는 의료 현장에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이미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등 선진입 제도의 최대 수혜 분야가 AI"라며 "핵심은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은 의료기술은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가 곧 임상적 효과 검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제도는 우수한 의료 기술을 조기에 시장에 도입·활용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최장 250일이 걸리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생략하고 식약처 인허가만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면서 제도 취지와 달리 오진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성형 AI 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보고서에서 "생성형 AI 의료기기는 잠재적 적응증까지 고려한 새로운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관리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제시했다. 단순 허가 여부를 넘어 지속적인 감시가 제도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절차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우려를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성홍모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장은 "AI 의료기기는 허가 단계에서 이미 안전성과 유효성을 엄격히 심사받는다"며 "부작용 발생 시 업체와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모델 업데이트에 대해서도 별도 감시 체계를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성홍모 과장은 "지난해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에 따라 특성을 반영한 관리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며 "주요 성능이나 사용 목적이 중대하게 변경되면 기업은 변경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관리의 정교화'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창민 회장은 "임상에서 기대만큼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오남용·부작용이 확인된 기술에 대한 시장 퇴출 기전이 분명히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속도와 안전은 별개 문제"라며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춘 만큼 강력한 사후 모니터링과 명확한 퇴출 구조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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