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발렌타인데이의 주인이 바뀌었다. 커플? 아니다. 바로 금쪽같은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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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기이한 소비 패턴의 원인을 1인 가구와 비혼 트렌드에서 찾는다. 과거 4인 가족 중심 사회에서는 가장이 벌어온 돈으로 가족 전체가 소비하거나, 기념일이 타인인 가족이나 연인을 위한 행사였다. 하지만 2030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부양 가족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면서 타인을 위한 지출은 줄었지만, 대신 내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오롯이 나를 향한다. 남 챙길 돈으로 나나 잘 챙기자는 실리주의가 기념일 문화마저 바꿔놓은 것이다.
여기에 평균 실종 현상도 한몫했다. 어중간한 가격의 선물은 외면받지만, 아주 싸거나 아주 비싼 것만 살아남는다. 기왕 돈 쓸 거면 확실하게 나를 대접하겠다는 가심비 추구가 10만원짜리 초콜릿 박스를 완판시키는 동력이다.
과거의 발렌타인데이가 남의 기분을 맞추는 날이었다면, 지금은 철저히 내 혀를 호강시키는 날이다. 편의점 매대에 쌓인 1+1 초콜릿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프랑스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는, 이름도 읽기 힘든 브랜드의 초콜릿을 고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에게 주는 선물은 이거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은 타율 100%의 홈런이기 때문이다. 내가 민트초코를 좋아하면 눈치 안 보고 치약 맛 나는 걸로만 꽉 채우면 그만이다. 이 완벽한 취향의 독재야말로 혼자 사는 즐거움 아니겠는가.
이 소비의 기저에는 보상 심리라는 강력한 명분이 있다. 생각해보라. 1월 내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사회적 미소를 짓느라 얼마나 힘들었나. 설 연휴에 잔소리 폭격을 견뎌내야 하는 나에게 이 정도 사치는 부려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묻는다. 그 돈이면 뜨끈한 순대국이 몇 그릇이냐고. 하수다. 순대국은 배를 채우지만, 10만원짜리 위스키 초콜릿은 자존감을 채운다. 비록 내 통장은 텅 빈 텅장이 될지언정, 최고급 디저트를 음미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구역의 VIP다. 옆구리는 시려도 입안은 달콤해야 버틸 수 있는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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