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의 시선N] K-컬처에 7천억 수혈…진짜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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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의 시선N] K-컬처에 7천억 수혈…진짜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

뉴스컬처 2026-02-08 07:39: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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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발표한 7318억 원 규모의 콘텐츠 정책펀드는 공개 직후부터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케이(K)-컬처 300조 원 시대’라는 거대한 비전과 맞물린 이번 계획은 정부가 콘텐츠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의 전면에 올려두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 정책의 무게를 보여준다.

정책의 특징은 제작 지원을 넘어 금융 구조를 확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모태펀드를 축으로 IP, 수출, 문화기술, 신성장, M&A·세컨더리 등으로 세분화한 구조는 콘텐츠 산업을 하나의 순환 가능한 투자 생태계로 재편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흥행 성과와 산업 체질 사이의 간극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미국 뉴욕시 타임스스퀘어에서 처음 공개된 삼성전자와 방탄소년단(BTS)의 협업 영상. 2022.8.11. 사진=연합뉴스
미국 뉴욕시 타임스스퀘어에서 처음 공개된 삼성전자와 방탄소년단(BTS)의 협업 영상. 2022.8.11. 사진=연합뉴스

대형 IP 펀드 확대는 그 중심에 놓인 장치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지식재산에서 나오지만, 국내 제작사는 자금 압박으로 IP를 장기 보유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동일 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번 구조는 IP를 축적 가능한 자산으로 만들겠다는 금융적 해법이다. 제작 중심에서 자산 중심으로 무게를 옮기려는 방향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IP 펀드가 산업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투자 회수 구조 역시 장기적 관점에 맞춰 조정돼야 한다. 회수 압박이 강하게 작동하면 제작 현장은 다시 단기 흥행 위주 전략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세계관과 캐릭터를 장기간 확장하는 전략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금의 성격도 이에 걸맞은 인내 자본이어야 한다.

수출 펀드는 K-콘텐츠의 외형 성장을 가속하는 수단으로 제시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존재감은 이미 확인됐지만, 유통과 판권 구조에서는 여전히 해외 플랫폼 의존도가 높다. 자본 지원이 해외 진출 확대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협상력까지 높이지 못하면 국내 기업의 이익 배분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남는다. 수출 규모 확대와 산업 주도권 확보는 다른 차원의 과제다.

문화기술(CT) 펀드 신설은 제작 환경의 산업화를 겨냥한 포석으로 읽힌다. 버추얼 프로덕션, AI 기반 제작, 실감형 콘텐츠 기술은 이미 글로벌 스튜디오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술 격차는 곧 제작비 효율과 결과물의 완성도 차이로 이어진다. 이 영역에 대한 투자는 인력 중심 구조를 기술 기반 구조로 전환하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있다.

문제는 기술 투자의 성격이 장기적이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데 있다.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분야에 정책금융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지가 성패를 가른다. 단기 수익률 중심의 운용이 이뤄질 경우, 도전적 기술 개발보다는 검증된 영역 위주로 자금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신성장 펀드는 창업 초기 기업과 게임·웹툰 등 유망 분야에 집중하도록 설계됐다. 산업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이미 민간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영역이다. 정책 자금이 민간 자금을 밀어내는 구조가 형성되면 기대한 파급 효과는 줄어들 수 있다. 정부 자금은 시장 공백을 메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낸다.

M&A·세컨더리 펀드 조성은 그동안 취약했던 회수 시장을 보완하려는 시도다. 콘텐츠 기업은 성장 이후 자본 회수 통로가 제한적이어서 투자 유치에 구조적 제약이 있었다. 회수 시장이 활성화되면 투자 선순환의 토대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진다. 동시에 유망 기업이 해외 자본에 편입되는 통로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은 산업 주권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 시민이 영화관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예매하고 있다. 사진=김규빈 기자
한 시민이 영화관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예매하고 있다. 사진=김규빈 기자

영화계정에 대한 지원 확대는 보다 긴급한 처방의 성격이 짙다. 정부 출자 비율을 60%로 상향한 결정은 민간 투자 위축이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메인투자 펀드 확대와 중저예산·애니메이션 지원은 산업의 다양성을 지키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다만 관객 감소와 극장 중심 수익 구조 약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제작 확대가 곧 산업 회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민간 투자 유인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 개선도 병행됐다. 우선손실충당과 초과수익 이전, 콜옵션 확대는 자금 모집 측면에서 효과적인 장치다. 반면 정부가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투자 심사의 긴장도가 낮아질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콘텐츠 산업 특유의 높은 변동성을 감안하면 운용 단계의 전문성과 책임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결국 정책의 성패는 운용 역량에서 갈린다. 어떤 운용사가 자금을 맡고, 어떤 기준으로 프로젝트를 선별하며, 사후 관리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수행하는지가 실제 성과를 좌우한다. 정책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안정적인 수익 모델에만 집중할 경우, 자금은 인기 장르와 검증된 포맷에 쏠리는 흐름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케이 컬처 '300조 원’이라는 목표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IP를 장기간 보유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반복 수익을 창출하며, 기술을 통해 제작 효율을 끌어올리고, 안정적인 회수 구조를 갖출 때 비로소 산업 규모는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정책펀드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본 투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숫자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이 산업 구조에 남기는 흔적과 지속성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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