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예산 사전 심의권 확보했지만, 간사 부처 선정 두고 기재부와 복지부 갈등
실무 부담은 복지부에 집중되고 권한만 행사하는 옥상옥 구조에 대한 우려 제기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대한민국의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위원회는 인구전략위원회라는 새 이름을 내걸고 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변화를 준비 중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위원회에 실질적인 힘을 실어줄 예산 사전 심의권의 확보다. 그동안 여러 부처의 정책을 단순 취합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아온 위원회가 이제는 예산의 흐름을 직접 들여다보며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외형적 변화의 이면에는 부처 간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과 실무진의 깊은 시름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위원회의 운영 방향을 결정짓는 간사 부처 자리를 놓고 보건복지부와 기획예산처 사이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예산 사전 심의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면서 기획예산처가 위원회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내부에서는 위원회의 실질적 권한 행사를 두고 기획예산처와 보건복지부 사이의 미묘한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예산 사전 심의권은 본래 기획예산처의 고유 권한인 예산 편성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기획예산처 입장에서는 이 권한을 나누는 만큼 위원회 내에서 간사 역할을 맡아 실질적인 통제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모양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인구 정책의 실무를 전담해 온 상황에서 간사 자리마저 내줄 경우 위원회의 하수인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복지부 내부에서는 일만 하는 며느리 역할은 복지부가 다 하고 생색내는 시어머니는 기획예산처가 맡는 꼴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실무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은 복지부의 몫이지만 정작 생색이 나거나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는 위원회와 기획예산처가 독식한다는 불만이다. 특히 위원회 조직 인력은 40명 남짓한 소규모인 상태에서 권한만 비대해질 경우 현장과의 괴리가 커지는 옥상옥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거 위원회 운영 과정에서도 소통 부재로 인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실무진이 공들여 준비한 정책 발표를 위원회 측에서 사전 협의 없이 가로채거나 부처 차관의 소신을 담은 인터뷰 내용에 대해 위원회 측이 강하게 항의하는 등 주도권을 둘러싼 감정싸움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갈등은 결국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고 실무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롭게 출범할 인구전략위원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예산 사전 심의권과 같은 외형적인 권한 강화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 간의 명확한 역할 분담과 협력 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권한 강화는 오히려 행정 효율을 떨어뜨리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실무 부처의 고충을 세심하게 살피고 이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인구 절벽이라는 거대한 위기는 어느 한 부처나 위원회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인구전략위원회가 부처 간의 힘겨루기 장소가 아닌 진정한 국가 전략의 산실이 되기 위해서는 권한의 집중보다는 협력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 선임될 부위원장이 이런 부처 간 갈등을 봉합하고 실무진의 헌신을 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인구 정책 성패의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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