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얼굴 60년…내면과 역사 응시한 회화 세계
여든 넘어서도 얼굴 그리기 계속…"과거보다 지금이 그림 실력 더 좋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강렬하고 거친 선들이 모이자 뭉개지고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슬픔과 피로, 고요함이 배어 있는 얼굴들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기 위해 평생 한국인의 얼굴을 탐구해온 화가 권순철(82)의 초대전 '응시, 형상 너머'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얼굴이라는 형상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역사적 기억을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시선을 조명하는 자리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60년 이상을 한결같이 한국인의 얼굴을 그려왔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공원이나 기차역, 버스 터미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 스케치한다. 특히 주름이 가득하고 비틀어진 노인의 얼굴을 주로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도 노트와 스케치북에 빠르게 그린 얼굴 드로잉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좋은 얼굴은 노인이어도 많은 사람 중에서도 좌중을 압도한다. 위엄이 있고, 열심히 살아온 흔적들이 묻어 있으며 극복의 힘과 내면의 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며 "한국인의 얼굴엔 중국, 일본 사람과 달리 고난과 상흔, 투쟁을 견뎌낸 역사와 정신이 묻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가로 130㎝, 세로 162㎝ 크기의 한지에 묵과 아크릴로 그린 '얼굴' 연작도 걸렸다. 작가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한 것으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에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당시에는 스탠드에 세워 전시했지만, 이번에는 와이어에 걸어 공개했다.
작가는 "그린 지 30년이 된 작품이다. 국내에는 소개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돼 선보이게 됐다"며 "지금은 저 때보다 그림 실력이 더 좋아졌다. 지금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움도 드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1979년에 만든 '한국인의 얼굴을 찾아서'는 얼굴 그림에 대한 작가의 고뇌와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다 마음에 안 들어서 불로 태우고는 그 위에 다시 색을 칠했다.
작가는 "얼굴을 그렸다가 태우고 색을 칠했더니 추상인데 그 안에 얼굴처럼 보이기도 해서 이렇게 제목을 지었다"며 "많은 작가가 구상과 추상 중에 한 작업만 하는데 젊어서부터 이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6년 작 '얼굴'과 2002년 작 '몸', 2010년 작 '등'은 예수와 관련된 작품이다. '얼굴'은 그가 평생 그려온 한국인 얼굴이지만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썼다. '몸'과 '등'은 채찍질 당한 예수의 몸을 구현한 작업이다.
가로 780㎝, 세로 195㎝ 크기의 대형 작품 '넋'은 수많은 넋이 승천해 은하수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한 이미지다. 여러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 학살 사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넋을 형상화했다.
작가는 "고통받은 이들을 주로 그리다 보면 몸도 마음도 힘이 든다. 하지만 표현이 잘 되면 내가 그래도 이들의 넋을 위로해 줬구나, 한풀이를 해줬다고 하는 마음이 들어서 편안해진다"고 털어놨다.
작가의 자화상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평생 한국인의 얼굴을 그려온 작가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자화상을 그린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 "좋은 얼굴을 보다 내 얼굴을 보면 그리 좋은 얼굴은 아니지만 연습하려고 꾸준히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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