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전람회에서 유물들을 선보이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대구와 경성, 그리고 도쿄에서 보관하고 있던 유물들을 단순히 보관만 하지 않고, 여러 차례 전람회에서 출품하기도 했다. 먼저 1929년 9월 15일부터 11월 3일까지 대구에서 개최된 '신라예술품전람회'에 여러 유물들을 선보였다.
이 전람회는 '조선박람회 경상북도협찬회'가 주최한 행사로, 대부분의 전시품들은 오구라 다케노스케, 이치다 지로(市田次郎), 스기와라 초지로(杉原長次郞), 시라카미 쥬요시(白神壽吉)와 같이 대구와 경상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수집가들의 개인 소유 유물들이었다. 이 전람회는 개최 이후 19일 동안 1만 9309명이 찾아올 정도로 큰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조선박람회 경상북도협찬회는 오구라 다케노스케와 이치다 지로가 출품하려고 하는 335점에 대해 조선총독부에 감별을 의뢰했다고 한다. '비장품'(備藏品)도 있었다고 하니 대단한 유물을 출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소장하고 있던 유물 일부의 유리건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는데, 그 중 신라예술품전람회에 출품한 것도 있다. '대구 개최 신라예술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유리건판인데, 총 31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해당 유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 위의 이미지와 같이 왼쪽 상단부터 차례대로 '수레모양토기', '금동일광삼존불상', '금동제삼층탑문사리합/은제타출보탑형사리기/은제타출당초문사리기/사리병', '금동보살입상', '접형 관식과 장신구 각종', '마형토우', '쌍룡문환두대도병두', '인물형토우' 등이 있었다. 이 유물들은 사리병을 제외하고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오구라 컬렉션으로 소장되어 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손에 넣은 유물을 일본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1938년 11월에 일본 제실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제실박물관 복흥개관기념 진열도자기 전람회'에 고려청자를 출품한 것이다. 이 전람회는 박물관이나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우수한 도자기들을 전시하는 행사였으며, 조선에서 반출된 미술품들도 일부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출토된 '청자구룡정병'(靑磁九龍淨甁)을 선보였는데, 현재 일본의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될 만큼 고려청자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람회 당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소장하고 있었으나 이후 경위는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 야마토 문화관(大和文華館)의 소유가 되었다.
대구 자택의 유물들을 도난당하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손에 넣은 유물들과 관련하여 웃픈(?) 일화가 있다. 1938년 8월에 그가 대구 저택에 보관하고 있었던 유물들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관한 당시의 신문 기사를 살펴보자.
대구부 히가시몬초(東門町) 38 남선합동전기회사장 오구라 다케노스케씨 저택 창고 내에서 신라 삼국시대의 국보급 불상 외 7체의 불상이 어느샌가 절취되어 있는 것을 요즘 발견, 대구서에서 비밀리에 범인을 수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신라 유품 수집의 권위자로서 유명한 오구라씨가 소장하고 있었던 것인 만큼 시가 2, 3만 엔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고고 자료로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삼국시대의 불상도 손에 넣었었는데, 그 가운데 여러 점의 불상들을 도난당한 것이다. 신문 기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먼저 도난당한 불상 중에 가치가 높은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국보급'에 해당하고 '고고 자료로서 얻기 어려운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 해당 유물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가치가 상당히 큰 것이었다는 점은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당시에 유물 수집가로서 널리 알려졌다는 점이다. 도난 관련 기사가 실린 <경성일보> 에서는 그를 '신라 유품 수집의 권위자'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이는 <매일신보>(1938년 8월 23일)에서는 언급한 바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예전부터 유명하다고 하는 많은 진귀한 고물을 힘써' 왔기 때문이다.
1929년 하반기에 열린 '신라예술품전람회'에 유물들을 출품했을 때 <조선시보>는 그를 '애호가'라고 언급했는데, 불상을 도난당한 1938년 8월 시점에서 <경성일보>는 그를 '권위자'로 표현했다. 이때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단순한 유물 수집 '애호가'를 넘어 '권위자'로서 인정(?)받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살펴보면 대구경찰서뿐만 아니라 경성의 경찰서들도 불상 절도범을 찾기 위해 수사를 벌였다는 점에서 당시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권세(權勢)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불상과 같은 유물은 당시 경매 등 합법적인 매매보다는 도굴품이나 도난품일 가능성이 컸는데, 그가 도난당한 불상들도 불법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매일신보>에 "대구서에서는 범인을 혈안 수사 중이던 바 범인이 경성으로 잠적한 듯한 행적이 있으므로 경성 각서에 수배하여 시내 각 경찰에서는 범인을 엄탐(嚴探) 중이라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상당한 양의 도굴품을 수집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도난당한 불상을 찾아내기 위해 대구경찰서뿐만 아니라 경성의 경찰서까지 수사를 요청한 것인데, 이는 그가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개의치 않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령 경찰서장이나 경주 경찰서장이 그의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문제 삼지 않은 것처럼 대구경찰서나 경성의 경찰서들도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건드리지 않고 불상 절도범을 수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불상 도난 사건 당시 재력가로서는 물론이고 유물 수집의 '권위자'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대구경찰서와 경성의 경찰서들은 이를 문제시하지 않고 '혈안'이 되어 불상 절도범을 수사했던 것이다.
■ 참고문헌
정규홍 편저, <구한말·일제강점기 경상도지역의 문화재 수난일지>, 경상북도·(사)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20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경성일보>, <매일신보>, <조선시보>, <조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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