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되면 집집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방을 붙이는 풍습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같은 글귀에는 새해 농사가 순조롭고 가족이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집 안으로 좋은 기운이 들어오길 바라는 뜻에서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맞이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입춘방을 붙인 뒤에는 식탁도 달라졌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에 기운을 돋우기 위해 제철 음식을 챙겨 먹었다. 이를 입춘 절식이라 불렀다. 입춘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었다. 한 해 농사가 잘되고 식구들이 무탈하길 바라는 바람이 담겼다. 이렇게 입춘은 글귀와 음식으로 봄을 먼저 맞이하는 날이었다.
1. 궁중의 보양식, 오장의 기운을 깨우는 '오신반'
궁중에서는 입춘이 되면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햇나물로 만든 ‘오신반’을 수라상에 올렸다. 파, 마늘, 자개, 달래, 평고 등 톡 쏘는 맛을 내는 나물들로 차려지는 이 음식은 겨우내 둔해졌던 몸의 감각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다섯 가지 색깔의 나물을 조화롭게 배치해 우리 몸속 기관들이 막힘없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조상들은 자극적인 매운맛이 몸속의 찬 기운을 몰아내고 새로운 봄의 기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돕는다고 믿었다. 이는 그저 계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한 해를 시작하며 몸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수라상에 오른 오신반은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이는 나라 전체에 봄의 활력이 퍼지기를 바라는 소통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2. 민간의 지혜, 봄의 생명력을 나누는 '입춘채'
민간에서도 궁중의 오신반과 비슷하게 햇나물을 무쳐낸 ‘입춘채’를 나누어 먹으며 다가올 봄의 생명력을 만끽했다. 쓴맛과 매운맛이 알맞게 섞인 봄나물은 나른해지기 쉬운 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입맛을 돋우는 데 도움을 준다.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을 채워주고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 몸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준다.
햇볕을 머금고 자란 어린잎을 가볍게 데쳐 무쳐내면 입안 가득 봄 내음이 퍼진다. 조상들은 이웃과 함께 입춘채를 나누며 모질었던 겨울을 무사히 넘긴 것을 축하하고, 다가올 농사철을 맞이할 기운을 얻었다. 흙을 뚫고 올라온 새순의 강인한 힘을 몸속에 채워 넣어 한해를 튼튼하게 보내고자 했던 백성들의 소박한 바람이 담긴 음식이다.
3. 든든한 몸보신과 가족의 안녕 '명태 순대'
추운 북쪽의 함경도 지방에서는 명태 속에 소를 채워 넣은 '명태 순대'를 입춘 별미로 꼽았다. 명태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뒤, 그 속에 두부, 숙주나물, 채소 등을 다져 넣고 쪄내는 조리 방식이다. 명태 순대는 겨울철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입춘을 맞아 든든하게 몸을 보하려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다. 명태 본연의 담백한 맛과 아삭한 채소의 식감이 어우러져 추위를 이겨낼 힘을 주었다.
이는 거친 바다와 추운 날씨 속에서도 가족들이 튼튼하게 겨울을 마무리하고 봄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결과다. 명태는 지방이 적고 아미노산이 풍부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을 차리게 돕는다. 큼직하게 썰어낸 명태순대 한 점은 모질었던 겨울을 견뎌낸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위로가 된다. 함경도 사람들은 이를 나누어 먹으며 다가올 농사철의 고단함을 이겨낼 채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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