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강제동원 피해·유골 봉환 노력 조명한 영상 공개
위험한 현장 놓인 노동자 75%가 조선인…당시 조사·책임자 처벌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편안히 잠들라, 탄광의 남아여"
1982년 일본 혼슈 서부 야마구치현 우베(宇部)시 조세이(長生) 탄광 부지에 추모비가 세워진다. 공식 명칭은 '조세이 탄광 순난자(殉難者)의 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순난자는 국가나 사회가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의로이 목숨을 바친 사람을 뜻한다.
비석은 1942년 2월 3일 조선인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물속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사고를 추모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인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 왜 그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해야 했는지 등 당시 강제동원의 현실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를 본 시민들과 향토 사학자들은 모임을 꾸려 행동에 나선다.
1991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들은 피해자 명부 조사, 탄광 환기·배수 시설인 '피야' 보존 등을 위해 힘을 모았다.
"왜 아직도 많은 조선인이 바다 밑에 잠들어 있는지 역사적 경위를 사죄의 의미를 포함해 역사에 새기고자 한다.(중략) 일본인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다." (모임 선언문 중에서)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84주기를 맞아 당시 강제동원 피해의 진실을 조명하고, 유골 봉환을 위해 애쓴 노력을 영상으로 만나보면 어떨까.
동북아역사재단은 '히스토리 앵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남겨진 사람들, 기억과 책임' 영상을 공개한다고 7일 밝혔다.
조세이 탄광은 우베시에 있었던 해저 탄광이다. 해저에 갱도가 있어 특히 위험했는데, 조선인 노동자가 유독 많아 '조선탄광'이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영상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의 역사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를 '검은 다이아몬드', '조세이 탄광', '기억과 책임'을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한일 역사 문제를 연구해 온 남상구 재단 교육홍보실장(수석연구위원)과 최원정 KBS 아나운서가 약 17분간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조세이 탄광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 실장은 "조세이 탄광은 야마구치현에서도 조선인을 가장 많이 동원한 곳"이었다며 "다른 탄광은 조선인 비율이 10% 내외였으나 조세이 탄광은 75%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수몰 사고의 원인과 관련,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갱구를 지탱하는 안전장치인 석탄 기둥마저 파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고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며 "당시 조선에 있던 유족에게 사고 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연락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상은 향토 사학자였던 야마구치 다케노부(山口武信·1931∼2015) 씨가 '우베 지방사 연구' 잡지에 글을 발표했던 일부터 모임이 결성돼 활동하는 과정도 다룬다.
재단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의 진실과 강제동원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한일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 대표단은 이날 우베시 조세이 탄광 추모 광장에서 열리는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84주년 희생자 현지 추도식'에 참석한다.
추도식에는 유족회 12명과 시민단체 70여 명 등이 참석하며, 정부 대표단은 추도사 낭독, 헌화 등을 통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유해 수습을 위한 잠수 조사는 11일까지 진행된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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