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미국이 인공지능(AI)을 앞세워 ‘고성장·저인플레이션’이라는 1990년대식 경제 패러다임의 재현을 노리고 있다. AI를 통해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려 공급을 확대하면 물가 압력 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 스콧 베선트 장관은 지난해 7월 “AI를 통해 90년대 제 젊은 시절의 패러다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당시 앨런 그린스펀은 IT 붐 덕분에 경제를 매우 뜨겁게 운영할 수 있었고, 우리는 강력한 비인플레이션 성장을 경험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1990년대 IT 혁신이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면서도 물가 압력을 억제해, 고성장·저인플레라는 이례적인 조합을 가능하게 했던 시기에 대한 설명이다. 이처럼 AI를 통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다시 한번 구현하겠다는 베선트 재무장관의 ‘노 인플레 고성장’ 비전은 AI 생산성 폭증으로 공급을 확대해 물가를 잡겠다는 논리다.
즉 AI가 노동 효율을 극대화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상품·서비스’를 생산한다는 공급측 접근이다.
이와 관련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오건영 단장은 “생산성이 높아져서 공급사이드에 혁명이 일어나면 물가가 낮아지는 것”이라며 “AI 설비 투자를 늘리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줘서 물가 안정을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피지컬 AI 실증랩 개소식’에서 점검한 ‘피지컬 AI 사전검증 사업’ 성과에 따르면 생산량은 증가한 반면 생산 처리시간과 제조 원가, 불량률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DH오토리드(스티어링휠)·대승정밀(전동브레이크)·동해금속(자동차 차체) 등 자동차 부품업체 3사가 실증에 협력했는데, 3사 모두 생산량이 기존 대비 5.1%에서 11.4%까지 올랐다. 생산 처리시간도 10% 안팎으로 단축됐으며, 특히 제조 원가의 경우 DH 오토리드는 80%, 대승 정밀은 75%가 절감됐다. 대승정밀의 불랑률은 19.4% 줄었다.
BMW는 AI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시트 메탈 부품 조립 정밀도를 밀리미터 단위로 높였고, 도요타는 협업 로봇(cobot)과 AI 비전 시스템으로 안전 검사·조립을 자동화해 효율 20~30% 증가와 불량률을 줄였으며, 투자 수익(ROI) 달성 기간을 24~36개월로 단축했다.
이처럼 AI의 생산성 증대가 명확한 가운데 AI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 역시 실질 GDP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인공지능이 GDP 성장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의 미국 실질 GDP 성장률 2.51% 중 AI 관련 투자(정보처리장비 0.42%포인트+소프트웨어 0.35%포인트+R&D 0.13%포인트+데이터센터 0.07%포인트)가 총 0.97%포인트(39%) 기여했다. 이는 닷컴 버블 시기(28%)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이 시기는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비인플레이션 성장 구간이다.
베선트 장관과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AI 붐을 정책적으로 밀고 있다. 지난 12월 연설에서 “AI와 로보틱스 등 기술 혁신의 생산성 이득을 모든 미국인이 공유해야 한다”며 Trump Accounts(신생아 투자 계좌) 도입을 통해 AI 성장 수익을 분배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함께 구글·블랙스톤 등 900억달러 AI 인프라 투자 유치에 성공한 베선트는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으로 데이터센터·반도체 투자를 가속화하며, AI를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실제 미국 증시는 AI주 중심으로 폭등하며 이 효과를 입증했다. 지난해 S&P500 지수는 16% 가량 상승했고, 모닝스타 미국시장지수의 상승률 17.4% 중 기술·통신서비스 부문이 58% 기여했다.
모닝스타 미국 시장 지수는 투자 분석 회사 모닝스타가 제공하는 미국 주식 시장의 광범위한 벤치마크 지수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 동향을 추적하거나 비교 분석할 때 사용된다.
아울러 엔비디아(시총 4조7000억달러)와 Alphabet(3조9000억달러)는 시장 수익률에 2%포인트 이상을 더했을 뿐만 아니라 두 회사의 주가 상승분은 지난해 전체 상승분의 4분의 1 이상이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AI가 미국의 투자, 그중에서도 고정 투자 쪽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지난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AI 투자를 중심으로 한 무형자산 투자 사이클이 견고하게 이어지며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고성장을 이뤘다”고 분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도 이같은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워시는 AI 혁신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것이라며, 연준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버리고 금리 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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