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도 않는 '백만장자 탈한국'…철지난 '떡밥' 덥석 문 보수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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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도 않는 '백만장자 탈한국'…철지난 '떡밥' 덥석 문 보수언론들

프레시안 2026-02-07 09:09: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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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웃도는 상속세 낼 바에" 부자 2400명 한국 떠났다(조선일보)

"상속세 50% 못내" 韓 떠나는 수퍼리치들…세계 4번째 규모 이탈(중앙일보)

50% 넘는 상속세에…부자 2400명 한국 떠났다(동아일보)

'상속세 더는 못 참아'…부자들 미련 없이 한국 떠났다(한국경제)

부자들의 선택2400명이 한국을 떠난 이유(서울경제)

상속세 부담에 脫한국 급증 … 국부 유출 부추기는 징벌적 세제(매일경제)

대한상공회의소가 4일자로 낸 보도자료를 인용한 주요 보수 일간지 및 경제지 기사·사설 제목들이다. 한국은 대체 어떤 나라길래 나라를 버리는 부자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대한상의 보도자료엔 이런 대목이 있다. "상속세 부담에 자산가 유출 세계 4위... '납부방식 개선'이 현실적 해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은 전세계에서 부유층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 이민 컨설팅사 헨리앤파트너스에 따르면 연간 한국 고액자산가 순유출 잠정치는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급증했고 영국,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이다. 상의 관계자는 '50~60%에 달하는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언론이 뽑은 자극적 제목의 원(原)소스다.

일단 몇가지 치명적인 팩트 오류의 문제들이 있다. 첫째, '영국 이민 컨설팅사 헨리앤파트너스'의 해당 보고서에는 상속세가 언급돼 있지 않다. 둘째, 2400명이라는 수치도 '잠정 추정치'인데다가 그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고 '핸리앤파트너스'라는 회사는 '부자들의 이민'을 컨설팅하는 에이전시이고 로비 회사에 불과하다. 대한상의가 인용한 이 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지적은 처음 나온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작년 발표 당시부터 논란은 영국을 휩쓸고 갔다.

존재하지도 않는 백만장자의 '대탈출' 괴담, '떡밥'을 물어버린 보수 언론들

▲대한상의 2월 4일자 보도자료 중
▲'헨리보고서'를 반박한 조세정의네트워크의 보고서 ⓒ조세정의네트워크 홈페이지

헨리앤파트너스의 보고서(헨리보고서)는 남아공에 사무실을 둔 뉴월드웰스(New World Wealth)라는 기업의 조사를 인용한다. 고옹플랫폼 '링크드인'에 따르면 뉴월드웰스의 종업원은 2~10명 수준이다. 사실상 1인 기업으로 운영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 뜬 부자 24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을까?

이 보고서는 조사 방법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추정치는 주로 백만장자 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밝힌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실제로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는 지'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이 보고서의 숫자가 백만장자의 실제 '물리적 이동'을 추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SNS 프로필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셈인데, 남아공에 살고 있는 한두 명의 컨설턴트가 전세계 6000만 명의 백만장자 이민 여부를 추적할 능력이나 될까?

영국의 비영리 단체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는 2025년 6월 핸리앤파트너스의 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보고서를 냈다. 헨리보고서는 거의 매년 나오고 있는데, 지난 2024년엔 이런 내용의 '엉터리 보고서'가 인쇄 매체, 방송 및 온라인 뉴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1만900건 이상이 보도됐다고 한다. 대한상의가 인용한 '2025년 보고서'도 마찬가지 수준이다. 조세정의네트워크는 이렇게 주장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백만장자들의 대규모 탈출 소식이 오늘 다시 언론에 널리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을 제기한 사람들은 최근 조세 정의 운동가들의 비판에 직면하여 해당 주장(대규모 탈출)을 철회했다."

핸리앤파트너스라는 회사 대체 무슨 회사인가? 초부유층에게 이른바 '황금 여권(Golden Passport, 외국인이 특정 국가에 일정 금액 이상의 투자, 기부, 부동산 매입 등을 하면 시민권을 빠르게 취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을 판매하고 유럽 각국 정부에 이같은 제도를 마련하도록 로비하는 회사다. 최근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회사의 자문으로 만들어진 영국령 몰타의 '황금여권 제도'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돈 세탁, 범죄 자금 유통 등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유럽에선 이같은 제도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또한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이주하는 백만장자는 전체 백만장자 인구의 1% 미만이다. 영국의 '애국 백만장자 협회'(Patriotic Millionaires UK), 영국 '조세정의협회(Tax Justice UK), 그리고 조세정의네트워크가 공동으로 '헨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회사가 2024년에 "대규모 해외 이주"로 국가를 떠날 것이라고 주장한 백만장자 수는 해당 국가 백만장자 인구의 거의 0%에 수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백번 양보해도 '헨리보고서'에서 주장하는 2025년 해외 이주 백만장자 수인 14만2000명은 전 세계 백만장자 인구(6000만 명)의 0.2%에 불과하다.

'애국백만장자협회' 회원인 줄리아 데이비스는 "이 보고서는 이전의 모든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백만장자의 고작 0.5%가 영국을 떠날 수도 있다는 주장에 왜 우리가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라고 지적했다. '영국 조세정의협회'의 알리마 시브지 사무국장은 "방법론이 의심스러운 선동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초부유층은 영국에 계속 거주할 것이며, 거의 100%가 두바이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영국을 선호한다. 나아가 그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이 나라에 기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득권층은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하도록 부추기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조작하려는 자산 관리 전문가와 로비스트들에게 속지 마시라"고 조언했다.

'조세정의네트워크'의 CEO 알렉스 코브햄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초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과를 원하고, 대다수의 백만장자들도 세금을 내라고 말하며, 모든 신뢰할 만한 연구 결과는 인구 이동이 미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론이 보도하고 정부가 귀 기울인 듯한 내용은, 초부유층이 돈으로 법망을 피해갈 수 있도록 돕는 회사가 발표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자료에 기반한 허구적인 백만장자 '대탈출' 이야기"라며 "이번 일은 언론 관계자와 정부 관료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유수의 한국 언론사들이 대한상의가 재인용한 이 '떡밥'을 물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매일경제 등이 대문짝만하게 인용한 이 기사의 제목들이 근거도 불분명한 SNS 프로필 취합 자료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대한상의도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했는데, '협조 요청 사항'이라며 추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서 인용한 Henley & Partners는 Wealth Migration Report라는 국제 자산가 이동 통계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 영국 소재의 민간 컨설팅 회사로, 동 자료는 국내외 언론 및 일부 기관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음. 다만, 해당 통계는 산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학술적·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함. 이와 관련 보도시 향후 추가적인 검증 및 확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위 통계 부분 인용을 자제해 주실 것을 요청드림."

대한상의 스스로 '헨리보고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통계 인용'을 자제해달라고 한 것이다. 스스로 해당 통계가 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자제'해 달라는 건 무슨 말인가. 무책임한 모습이다.

헨리보고서엔 '상속세 때문'이란 말이 없다

게다가 헨리보고서에는 '백만장자들의 이민'의 원인이 '상속세'라고 명시돼 있지 않다. 대한상의 측이 "한국 고액자산가 순유출 잠정치는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급증했다"며 "상의 관계자는 '50~60%에 달하는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말한 것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 조세정의네트워크는 헨리보고서가 이런 보고서를 낸 이유로 오히려 '부유세'(혹은 부유세에 준하는 보유세 등)를 언급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부유세'가 없다.

부유세 성격의 '종합부동산세' 같은 게 있지만,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로 OECD 평균(0.33%)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하며 30개국 중 20위에 해당한다. 한국 부자들이 '상속세' 때문에 떠난다는 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한상의 관계자는 "헨리 보고서 내용에는 '경제적 압박'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경제적 압박'에 '상속세 압박'이 포함돼 있다고 추정하고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속세'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대한상의의 선의를 왜곡할 생각은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상속세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지 않은가. 상속세를 문제삼는 게 뭐가 잘못이겠는가. 국회나 재계, 시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댈 문제다. 하지만 근거도 희박한 해외 로비 업체의 천박한 수준의 보고서를 굳이 인용해서 '부자들의 탈한국' 공포 마케팅을 펼 이유는 없지 않은가? 대한상의가 헨리보고서 내용을 '추정'하고 '해석'한 것처럼 나도 이 보도자료의 의미를 '추정'하고 '해석'을 해보건데, 결국엔 '부자 탈한국' 프레임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부가, 혹은 '집권 세력'이 부자들을 싫어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한국, 혹은 한국 정부는 '나쁜 정책'을 펴고 있으니, 정부를 비난하시라는 건가?

'헨리보고서'의 철지난 '사골 떡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부자 2400명 탈한국' 프레임은 보고서가 나온 지난 6월부터 조선일보, 문화일보 같은 보수 언론들이 계속 우려먹기 식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잘못된 작은 정보를 방치하면 그게 모여서 '신화'가 되고 '프레임'이 된다. '부자 탈한국'이라는 엉터리 프레임에 놀아나지 말자.

▲ⓒSBS 보도 화면 갈무리
ⓒ채널A 보도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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