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자금 경색으로 위기에 몰린 홈플러스가 근로자와 입점업체 등의 탄원서를 앞세운 ‘여론전’에 나섰다. 현장의 절박함을 지렛대 삼아 정부와 채권단 등의 지원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점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다”는 홈플러스 측 설명과 달리, 탄원서 수집은 본사 주도로 단 이틀 만에 ‘속전속결’ 처리된 정황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점주 단체를 배제한 채 탄원서를 모으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말부터 한마음협의회(직원대의기구), 임대점주, 납품업체 명의의 탄원서를 금융위원회와 국회, 대통령실 등에 순차적으로 제출했다. 회사 측은 약 3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대출(DIP) 대출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넘기겠다는 구상이다. 메리츠와 산은이 각각 1000억원을 부담하고,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나머지 1000억원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는 방식이다. 하지만 채권단은 MBK의 직접 출연 등 더욱 적극적인 자구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지원은 어렵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번 탄원서 제출은 정부와 채권단을 상대로 한 여론 호소 성격이 짙다. 홈플러스가 아닌 근로자와 입점업체, 납풉엄체 등이 주체가 되어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본사가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며, 입점업체들의 반발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홈플러스 서울 강서점 입점업체 점주 김모(65) 씨는 지난달 31일 본보와 만나 “탄원서 제출은 내가 기획한 게 아니라, 홈플러스 테넌트(입점업체) 관리자가 먼저 제안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번 입점업체 탄원서 제출을 위해 국회와 금융위원회에 방문한 점주 중 한 명이다.
김씨에 따르면 탄원서 작성 과정에 본사가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연명 서명 역시 회사 측이 주도해 진행됐다. 김씨는 “납품 물량 감소로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어 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동참한 것”이라면서도 추진 주체는 본사였음을 시사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본지에 “탄원서는 점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제출한 것이며 본사 직원이 제안한 적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홈플러스 측의 탄원서 취합 과정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지난달 28일 본사 직원이 김씨를 찾아온 뒤, 전국 매장의 직원들이 동원돼 2000여명의 점주 서명을 단 이틀 만에 확보하고 관계기관 제출까지 진행된 것이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국회(2105명)와 금융위(2073명)에 제출된 서명인 수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실수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탄원서 제출 과정에서 입점업체 점주 단체인 ‘홈플러스 입점점주협의회’(이하 협의회)가 배제된 점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협의회 간부이자 홈플러스 북수원점 입점업체 점주 강 모 씨는 “매장에서 점주들이 탄원서에 서명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위를 확인하려고 홈플러스 직원에게 탄원서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파일이 삭제되어 보여줄 수 없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지난해 3월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를 밟으며 같은 달 발족된, 홈플러스 유일의 입점업주로 구성된 단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노조, 정치권 등으로 구성된 '홈플러스 사태 해결 공동대책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협의회 강병국 회장 역시 탄원서 제출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 강 회장은 “협의회가 평소 MBK에 비판적이어서, 탄원서 제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추정한다”며 “일부 협의회 회원들이 협의회 차원의 서명으로 오인해 탄원서 연명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이에 탄원서 서명에 참여한 협의회 회원들이 서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협의회 측은 고심끝에 철회 요구를 접기로 했다. 강 회장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홈플러스 존속 여부가 점주 생존과 직결된 상황”이라며 “울며 겨자먹기로, 탄원서 반환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점주들의 절박한 공감대를 확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목소리를 모으는 과정에서 정당한 절차와 투명한 소통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주주의 진정성 있는 결단을 요구하는 채권단의 눈에, 본사 주도로 급하게 마련된 탄원서가 얼마나 무게감 있게 전달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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