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1심 선고…검찰은 '사형' 구형
피고인 "안산 가본 적도 없다"…조작 수사 주장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2001년 9월 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부부의 보금자리에 침입한 괴한 2명은 남편을 흉기로 20여차례나 찔러 살해하고 아내에게도 큰 상처를 입힌 뒤, 현금 1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폐쇄회로(CC)TV가 흔치 않아서 이 사건 파일은 오랜 세월 경찰서 캐비넷에 갇혀 빛을 보지 못했다.
미궁에 빠진 장기 미제 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탄 건 과학수사의 발달로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검은색 절연 테이프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DNA)가 나오면서다.
검찰은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토대로 특수강간을 저질러 징역 13년을 받고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모(45)씨를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확실한 물증은 이씨의 유전자가 묻은 검은색 절연 테이프 하나.
그런데 이씨는 "안산에는 가본 적도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 검찰은 "사형" 구형, 피고인 "무죄" 주장
이 재판은 이씨가 무죄를 다투면서 기소된 지 14개월 만에야 1심 선고 결과가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형사12부(김도형 부장판사)는 오는 10일 오전 10시에 301호 법정에서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결심 공판에서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었다.
형법 제338조(강도살인)는 '강도가 사람을 살해하였을 때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법정 최고형을 이씨에게 구형한 것이다.
검사는 이씨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조금의 반성조차 없다면서 죄책에 상응하는 엄정한 양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법정에 선 이후로 줄곧 억울함을 주장해 온 이씨는 재판부에 '무죄'를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씨 측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조작 수사'로 명명하면서 "20년 동안 해결 못 한 사건을 갑자기 해결했다면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무죄 주장 근거는…'증거 조작'
이씨가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는 사건을 해결한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검은색 테이프'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이 테이프는 그간 경찰이 증거로 보관해오다가 202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에서 이씨의 유전자가 검출된 핵심 물증이다.
이씨의 변호사는 당시 증거물을 담은 봉투의 아랫부분이 뜯어져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증거가 오염·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경찰이 미제 사건 수사를 재개하면서 사건 현장에 없었던 (이씨의 유전자가 묻은) 테이프를 증거로 끼워 넣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때문에 국과수에 증거물 분석을 의뢰한 경찰관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 경찰관은 "유전자 감식 결과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과학수사"라면서 "물증을 토대로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증거가 오염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있어서 장갑을 끼고 증거물이 든 봉투를 만졌다"며 "이후 국과수에서 이씨의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 과학수사의 발달…경찰 "조작 가능성 없어"
'안산 강도살인' 사건의 해결 과정은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기록됐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닮았다.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1980∼1990년대 살인과 성폭행을 반복해온 이춘재는 2019년 피해자의 옷가지에서 유전자가 검출되면서 33년 만에 덜미를 잡혔다.
과거에는 범행 현장에서 유전자를 채취했더라도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해야만 이를 대조해 동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구속 피의자, 수형인, 범죄 현장 증거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과학수사 기법도 빠르게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미량의 혈흔이나 침, 머리카락 한 올의 일부 등 극히 적은 양의 시료만으로도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을 이용, 유전자를 증폭해 감정할 수 있다.
경찰은 강력 사건에서의 증거물 조작 가능성은 '0%'라고 선을 그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의 유전자 감정 기술은 말 그대로 100%의 신뢰도가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어떤 장소에서 누군가의 유전자가 나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거기에 갔다'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이처럼 '조작 수사'를 주장하는 쪽과 '과학 수사'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면서 검은색 테이프의 진위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재판부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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