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저출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국내 합계출산율은 2017년 이후 단 한 차례도 1명을 넘어서지 못한 채 2024년 기준 0.7명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인큐베이터는 날로 비어가지만, 유통업계의 움직임은 역설적이게도 '키즈 고객'을 향한다.
자녀수가 줄면서 아이 한 명에게 온 가족의 지갑이 열리는 '골드키즈' 현상과 부모를 넘어 지인까지 소비에 동참하는 '텐포켓' 트렌드가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 전반은 앞다퉈 전용관 확대와 전문 브랜드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도 최근 키즈 시장은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뉴스락>은 저출산 시대에도 키즈 비즈니스가 주목받는 이유와 기업들의 대응 전략, 앞으로의 향방을 짚어봤다.
출산율 하락에도 키즈 소비 확대... '골드키즈·텐포켓'이 만든 구조 변화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키즈 관련 소비 구조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의해 재편되는 모습이다.
'골드키즈', '텐포켓', 'VIB(Very Important Baby)' 등 시장을 새롭게 설명하는 신조어가 잇따라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골드키즈'는 자녀 수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개별 자녀에게 지출이 집중되는 소비 구조를 의미한다.
여기에 부모뿐 아니라 이모·삼촌 등 친척, 나아가 부모의 지인까지 자녀 소비에 참여하는 '텐포켓(10 pocket)' 트렌드까지 맞물리면서, 키즈 관련 소비는 생필품·의류 중심 시장을 넘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 데이터 서비스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국내 키즈산업 시장 규모는 2012년 210억 달러에서, 최근에는 430억 달러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60조원을 웃도는 규모로, 출생아 수 감소 흐름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한편, 업계는 키즈 시장의 주요 소비 타깃은 영유아·아동이지만, 실제 구매 결정권자는 부모라는 점에 주목한다.
자녀 한명이 귀해진 환경일수록 개별 자녀에게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가격보다는 안전성·품질·브랜드 신뢰도를 중시하는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실질 구매력 확대도 키즈 소비를 지탱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국가 데이터처에 따르면 신혼부부 맞벌이 가구 비중은 2018년 47.5%에서 2023년 58.2%로 10% 이상 늘었다.
또한, 2023년 기준 초혼 신혼부부의 연간 평균 소득 7265만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하며 소득 수준의 상승세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저출산 기조에도 키즈 소비는 단가와 범위가 동시에 커지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며 "관련 소비는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식품·백화점·이커머스까지... 'VIB 모시기' 경쟁 본격화
키즈 시장의 성장 흐름이 이어지면서 업계의 대응 방식도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업태의 특성에 맞춘 차별화 전략으로 ‘골드키즈’와 ‘텐포켓’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먼저 식품·식자재 영역에서는 '안전성'과 '영양'을 앞세운 프리미엄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급식·보육 현장을 기반으로 한 B2B 시장은 '검증된 공급'이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CJ프레시웨이는 키즈 식품 전문 브랜드 '아이누리'를 앞세워 키즈 식자재 시장에서 외형을 키웠다.
아이누리는 농·축·수산물부터 주·부찬, 후식류까지 약 2만3000여 종을 취급하며, 이 중 PB 상품만 1000여 종을 운영한다.
지난해부터는 친환경·무항생제, 영양 성분 강화, 국내산 원료 사용 등 기준을 반영한 프리미엄 라인도 별도로 확대하고, 유치원·어린이집을 넘어 키즈카페·돌봄센터 등으로 공급 채널을 넓히는 방식으로 생활권 전반을 공략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1월 키즈 전문 식품 브랜드 '푸키루키(Pookie Rookie)'를 론칭하며, '국내산 재료'와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전면에 내세웠다.
푸키루키는 냉동 국물요리·유기농 쌀밥 등의 제품군을 선보이며 시장에 뛰어들었고, 캐릭터를 활용한 브랜딩과 라이브커머스·자사몰 이벤트 등으로 초반 고객 접점을 넓히는 전략을 병행했다.
영유아 핵심 카테고리인 분유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9월 약 7년 만에 산양분유 신제품인 '앱솔루트 산양100'을 내놓았다.
특히 회사가 진행한 자체 설문(0~15개월 부모 대상) 결과를 근거로 부모들의 소화·수유 간격(수유텀) 고민을 상품에 반영한 것이 눈에 띈다.
특별한 영양 설계(A2-베타카제인, 중쇄지방산, 탄수화물 설계 등)를 차별점으로 제시하며, 저출산 환경에서도 '초기 영유아 프리미엄' 수요를 겨냥했다.
백화점은 키즈 고객을 가족 단위 체류 시간과 연계 구매를 끌어내는 핵심 축으로 다룬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4월 인천점에 키즈 전문관 '킨더유니버스'를 1000평 규모로 조성하며 경기 서부권 수요를 겨냥했다.
공간 측면에서는 유모차 동선(곡선형 동선 설계), 휴게·수유 공간 강화, 포토존 등 '패밀리 편의'를 강조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10월 대구점 아동층을 '프리미엄 키즈 전문관'으로 리뉴얼하며 VIB 고객 모시기에 나섰다.
영남권 최초로 선보이는 트렌디한 아동복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하며, MZ 부모 세대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선물 수요와 프리미엄 키즈 소비 트렌드를 반영했다.
동시에 대구 지역 최초 키즈 멤버십 강화(바우처·마일리지 등)를 통해 '단골고객' 유치에도 신경쓰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공간'과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적으로 판교점의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킬러 콘텐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식품관 중앙에 '키즈&패밀리' 공간을 배치하는 등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이커머스는 '키즈 전용관'을 앞세워 큐레이션과 프로모션 등을 촘촘히 가져가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부모가 구매 결정권자인 만큼 '고르는 과정'을 설계해 구매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다.
쿠팡은 지난해 8월 '키즈 셀렉트 스페셜관'을 리뉴얼하며 참여 브랜드를 확대했다.
운영브랜드를 초기 20여개에서 50여 개 이상으로 늘리고, 브랜드별 제안 인기 상품 수를 최대 100개까지 확대한 것이 리뉴얼의 핵심이다.
롯데온은 지난 2023년 키즈 버티컬관 '온앤더키즈'를 론칭한 뒤, 브랜드 집중 조명 행사(키즈런) 등 프로모션을 활성화했다.
키즈런은 2024년 8월부터 시작해 매일 하루 한 개의 키즈 브랜드를 선정해 특가 혜택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이다.
키즈 시장도 '옥석 가리기' 국면... 프리미엄·IP·해외가 성패 가른다
지난해 출산율이 소폭 반등하는 흐름은 나타났지만, 저출산 기조는 굳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키즈 비즈니스를 둘러싼 수요 환경의 제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키즈 비즈니스가 외형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시장은 '누가 살아남느냐'를 가르는 경쟁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단기적인 판촉이나 카테고리 확장만으로는 성과를 유지하기 어렵고, 브랜드 신뢰와 콘텐츠 경쟁력, 기술 접목, 해외 확장 역량 등이 중장기 성과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하는 흐름이다.
업계가 전면에 내세우는 프리미엄 전략 역시 가격 인상이 아니라 안전과 품질, 검증 체계의 일관성이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영유아 식품과 용품의 경우 부모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원료와 공정, 정보 공개 등 신뢰 인프라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다.
프리미엄 포지셔닝이 지속 성과로 이어지려면 공급망 관리와 기준의 일관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IP 경쟁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캐릭터와 콘텐츠 기반 브랜드는 제품 판매를 넘어 체험과 교육, 굿즈, 공간으로 확장되며 반복 방문과 단골 고객 형성에 유리하다.
단일 상품의 히트보다 브랜드 세계관 구축이 누적 성과를 만든다는 점에서, IP 보유 및 확장 역량이 기업 간 격차를 벌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성장 한계가 분명한 내수 환경에서 해외 시장을 겨냥한 확장 전략도 변수다.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발판으로 유아동 콘텐츠와 교육 등 해외 진출이 늘고 있지만, 국가별 규제와 인증을 고려한 유통 파트너십을 동시에 설계하지 않으면 성과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다만 리스크도 뚜렷하다. 키즈 카테고리는 안전 등 규제, 품질 이슈의 파급력, 그리고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브랜드 리스크가 크다.
프리미엄 전략이 가격 부담으로 인식될 경우 수요 탄력성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고, 캐릭터 IP 의존도가 높을수록 콘텐츠 생명주기 관리 실패가 실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삼정KPMG는 "저출생으로 인한 비즈니스의 양적 수요기반 축소에도 심화되는 시장 내 경쟁강화로 부모 취향의 세분화와 다변화 등 키즈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면서도 "가격 및 비용구조의 효율화와 프리미엄 포트폴리오의 전환으로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키즈 비즈니스 시장은 점차 집중화되는 추세"라며 "다양화되는 부모의 취향에 맞춘 맞춤형 상품과 프리미엄 전략으로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면 시장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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