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선 선임기자 =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곳에선 왕과 왕비의 이야기뿐 아니라 당대 정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극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의 삶은 더욱 주목을 받는다. 조선 6대 단종(1441∼1457)도 그중 한 명이다. 단종의 왕비는 정순왕후(1440∼1521) 송씨였다. 단종은 강원도 영월에, 정순왕후는 경기 남양주에 각각 묻혔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 정순왕후의 무덤인 사릉은 세계유산에 포함된 조선왕릉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왕실 무덤을 분류했는데,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했다. 사릉은 소박한 모습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홍살문이 보이고 그 안으로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이 배치된 구조가 펼쳐진다. 경사진 사초지 위 무덤 주변에는 문석인과 석마가 있고 무석인은 보이지 않는다.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도 두르지 않았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의덕왕대비가 됐다. 이후 복위 운동 실패로 단종의 신분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낮아지자 정순왕후도 노산군부인이 됐다. 결국, 유배지로 떠난 단종은 1457년 숨졌다. 정순왕후는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시대를 지나 중종 때인 1521년 당시 나이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등에 따르면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 시댁인 해주 정씨 집안에서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고 제사도 지내줬다. 사릉 역사문화관 전시자료에서도 사릉 주변에 정미수(1456∼1512)를 포함해 해주 정씨 묘역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미수는 경혜공주의 아들이다.
정순왕후의 신분이 왕비로 회복된 것은 단종이 복위된 1698년이었다. 숙종 때 단종의 묘는 장릉(莊陵)이 됐고, 정순왕후의 묘는 사릉(思陵)이 됐다. 사릉은 정순왕후가 단종을 그리워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때 사릉 주변의 해주 정씨 묘들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한다.
사릉 역사문화관에는 영월 장릉에 대한 전시자료들도 있다. 장릉은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세계유산 조선왕릉이다. 단종을 위해 숨진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 등이 있다는 점이 여느 조선왕릉과는 다른 특징이다. 이곳은 능침까지 올라가는 산책로가 있어 관람객들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석물을 살필 수 있다. 지난해 9월 장릉을 취재한 적이 있다. 능침에 올라가면 건너편으로 산자락이 이어진 자연경관이 보였다. 능침의 석물 배치는 간소했으며, 문석인과 석호 등은 아담했다.
정순왕후는 '비운의 왕비'로도 불린다. 여기에는 단종과 함께했던 시간이 짧았고 권력의 정점에서 신분이 낮아지는 변화를 겪었으며 단종이 세상을 떠난 뒤 긴 세월 홀로 이어온 삶이 반영된 듯하다. 정순왕후 생전의 삶에 대해선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때로는 이야기 속에서 뭇사람들의 연민이 읽히기도 한다. 사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인근 경춘선 금곡역이나 사릉역까지 이동한 뒤 버스를 타고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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