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건설 경기 불확실성이 길어지면서 중견건설사들의 수주 전략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양상이다. 연간 수주액과 수주 잔고가 기업 성장성과 경쟁력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된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수주 규모보다 사업 '구조'를 먼저 점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기적 보수 경영을 넘어 건설업 전반 기준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견건설사가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최근 중견건설사 경영 전략에 있어 △선별 수주 △수익성 중심 △원가 관리 △현금 흐름 등 키워드가 반복되고 있다. 단순히 수주 목표를 낮추는 게 그치지 않고, 수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업 초기 단계에서 최대한 걸러내겠다"라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는 불확실성이 확대된 시장 환경에서 수주 자체보다 사업 완결성을 중시하는 기조 변화로 해석된다.
실제 다수 중견건설사들이 대규모 주택 개발 및 PF 비중이 높은 사업에 있어 이전보다 보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 외곽 또는 지방에서 추진된 1000가구 이상 규모 민간 주택사업 가운데 일부의 경우 사업성 검토 과정에서 보류 또는 철회된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분양·준공 시점 사이 시장 변동성, 공사비 증액 가능성, 금융 비용 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는 게 업계 시선이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사업 구조가 단순하고, 현금 회수 경로가 명확한 공공공사·관급사업을 향한 관심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실제 최근 중견건설사 수주 상당수가 지자체 발주 공공청사, 학교, 생활 SOC 시설 등이 포함되고 있다. 특히 관급공사의 경우 수익성이 좋지 않지만, 기성 기반 대금 지급 구조와 비교적 명확한 공정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수주 변화 흐름은 건설사 경영 전략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엠코테크놀로지 송도사업장 신규 테스트동 증축공사 조감도. Ⓒ 동부건설
실제 동부건설은 경영 전략으로는 △수익성 중심 내실 경영 △선별 수주를 강조하며, 수주 실적을 실질적 이익 및 현금 흐름으로 연결하는 실행력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수주 규모 자체보단 수주 이후 관리 단계 중요성을 전면에 둔 메시지로 분석되고 있다.
도시정비사업을 향한 시선도 달라지는 추세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 참여를 통해 외형 확대를 추구한 과거와는 달리 소규모 재건축·재개발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모아타운 등 분산형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프로젝트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사업 기간이 비교적 짧고 단계별 자금 회수 구조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비춰진 것이다.
실제 중견건설사 일부는 대형 정비사업 입찰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대신, 여러 중소형 정비사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수주 구조를 이전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전환해 단일 프로젝트 리스크가 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는 전략인 셈.
비주택 분야 역시 전략 변화 중요한 축이다.
이런 대표 건설사가 바로 코오롱글로벌이다. 코오롱글로벌은 비주택 부문 수주 확대 및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지속 추진하고 있다. 주택 중심 단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건축·인프라·하이테크 등 비교적 발주 지속성이 있는 분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방향성이다.
공공과 정비, 비주택을 혼합한 포트폴리오 구성도 최근 중견건설사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관측되고 있다.
HJ중공업은 건설 부문 수주 실적을 △공공공사 △도시정비사업 △기타 민간·해외 사업으로 구분해 설명하며 특정 분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이처럼 중견건설사들이 수주 선별에 무게를 두는 배경에는 공사비와 금융비용이라는 '이중 부담'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자재비 및 인건비 상승은 이미 공사 원가 전반에 반영되고 있으며,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설계 변경 또는 물가 변동 발생시 원가율은 추가로 흔들릴 수 있다. PF 금리 상승과 금융 환경 변화도 사업성 전제를 좌우하는 변수로 꼽힌다. 더군다나 중견건설사는 대형사에 비해 재무 완충력이 제한적이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착공 이후 변수가 누적되면 손익 구조가 비교적 빠르게 악화될 수도 있다"라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차라리 수주 단계에서부터 리스크를 최대한 걸러내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중견건설사 내부에서는 고위험 PF 사업에 대해 이사회 차원 별도 심의 절차를 두거나 자체 사업 비중 상한선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양양풍력발전 전경. Ⓒ 코오롱글로벌
수주 전략 변화는 수주 실적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신규 수주 금액 자체가 강조된 이전과는 다르게 최근에는 △원가율 관리 △흑자 유지 △현금 흐름 개선 등 항목이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중견건설사 움직임은 업황 전반을 가늠하는 신호로 풀이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 여력과 리스크 대응 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중견사가 먼저 전략을 조정한다는 점은 현재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라며 "단순히 개별 기업 보수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건설업 구조 자체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런 흐름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시장 역할 분담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대규모 자체사업·고위험 PF 사업은 참여 가능한 건설사 범위가 줄어들고, 중견건설사는 공공·정비·비주택 등 상대적으로 현금 회수 구조가 읽히는 영역에서 존재감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견건설사 수주 축소 전략은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 사업 생애주기 전반을 관리 가능한 형태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이라며 "공공공사에서 회수 구조를 확보하고, 도시정비에서 연속적 물량을 축적하며, 비주택으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건설업계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중견건설사 전략 변화가 향후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 이들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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