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인공지능(AI) 수요를 축으로 빠르게 회복되면서 수혜의 범위가 완제품 기업을 넘어 소재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AI 서버, 첨단 패키징 중심의 투자 확대는 반도체 제조 공정 전반에 투입되는 고부가 소재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호황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실적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최근 반도체 업황의 성격은 다르다. 미세공정 고도화와 전력·발열 관리 요구가 높아지면서 공정 안정성과 수율을 좌우하는 소재 경쟁력이 산업 전반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이클을 ‘칩의 호황’이 아닌 ‘소재의 시대’로 해석하는 시각도 늘고 있다.
◆ AI·첨단 패키징이 키운 전자소재… 두산의 CCL 부상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는 두산이 꼽힌다. 두산은 반도체·AI 서버용 기판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CCL은 반도체 칩을 실장하는 패키지 기판의 기본 소재로 고속 신호 처리와 고열·고전력 환경 대응이 필수적이다.
AI 서버용 기판은 기존 PC·모바일용 대비 기술 장벽이 높아 공급사가 제한적인데 두산은 고사양 CCL 분야에서 글로벌 고객사 검증을 확대하며 수주 기회를 넓히고 있다. 또한 GPU와 AI 가속기용 컴퓨팅 트레이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부가 CCL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AI 서버 확산이 이어질 경우 두산 전자소재 부문의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동시에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반도체 호황의 성격이 단순한 물량 증가가 아니라 고난도 공정과 고사양 소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 ‘국내 유일’ 고순도 소재… OCI의 반도체 전환 가속
화학 소재 분야에서는 OCI의 행보가 주목된다. OCI는 반도체용 고순도 폴리실리콘을 비롯해 인산, 과산화수소, 전구체, 특수가스 등 반도체 공정 전반에 필요한 핵심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용 고순도 폴리실리콘은 기술 장벽이 매우 높아 글로벌 공급사가 제한적인 품목으로 국내에서는 OCI가 사실상 유일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태양광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반도체 소재 비중을 확대해 온 OCI는 최근 반도체 업황 회복과 함께 실적 개선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투자 재개로 고순도 화학 소재 수요가 동시에 늘어나면서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의 안정성도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소재의 순도와 품질 요구가 더욱 까다로워지는 만큼OCI와 같은 고순도 소재 기업의 전략적 가치가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전구체·습식화학도 반등… ‘숨은 수혜’ 확산
전통적인 반도체 화학 소재 기업들도 이번 사이클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리고 있다. 솔브레인은 전구체와 습식 화학 소재를 중심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수요 회복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업황 부진기에도 연구개발 투자를 유지해 온 전략이 AI 반도체 국면에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솔케미칼 역시 반도체 전구체와 과산화수소 등 핵심 소재를 앞세워 실적 회복이 기대된다. 파운드리와 메모리 공정이 동시에 회복되면서 전구체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고객사 다변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동진쎄미켐 등 감광액·식각·세정 소재 기업들도 공정 미세화와 사용량 증가의 수혜를 받고 있다. 이들 소재는 공정 단계가 늘어날수록 사용 빈도와 단가가 함께 상승하는 구조여서 업황 회복 시 실적 레버리지가 크다.
◆ “반도체 경쟁력은 이제 소재에서 갈린다”
시장에서는 이번 반도체 호황의 특징으로 ‘양적 증설보다 질적 고도화’를 꼽는다. AI와 데이터센터 중심의 수요는 단순 범용 제품보다 고순도·고신뢰성 소재를 요구하고 이는 곧 소재기업의 기술력이 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반도체 화학 소재 업체 연구원은 “AI 반도체 확산으로 공정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소재의 역할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며 “이번 슈퍼사이클은 완제품 기업뿐 아니라 국내 소재 생태계 전반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이 점차 공정 안정성과 공급망 신뢰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소재기업들이 이번 호황을 장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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