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배신과 야합이 꿈틀거린 사무라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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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배신과 야합이 꿈틀거린 사무라이 역사

뉴스컬처 2026-02-06 12:34:10 신고

[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사무라이, 일본 정신의 검날 4

일본 야구 국가대표의 애칭인 사무라이재팬. 일본에 사무라이 명칭이 붙은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일본 야구 국가대표의 애칭인 사무라이재팬. 일본에 사무라이 명칭이 붙은 것은 수도 없이 많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에 대한 애칭이 붉은 악마이듯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애칭은 사무라이재팬이다. 야구와 사무라이를 연결시킨 것은 일본에 야구가 전파될 때부터 일본 사회가 무사들이 칼을 들고 겨루는 행위와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치는 것을 유사한 맥락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야구에는 ‘무사도(武士道)’가 깃들어 있다는 표현까지 나왔었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일본에 사무라이가 붙은 명칭은 수도 없이 많다. 사무라이 햄버거, 사무라이 숙성회, 사무라이 청바지까지 심지어 일본 채권시장에서 비거주자인 외국 정부나 기업이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을 ‘사무라이본드’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에게 사무라이는 ‘일본 정신의 본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속에서 수도 없이 사무라이가 나오는 것도 사무라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무한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호에도 이야기 했듯이 사무라이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사도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무사도는 ‘평생 한 곳에 목숨 거는 자세’를 뜻하는 ‘잇쇼켄메이(一所懸命)’를 근간으로 한다. 주군을 목숨을 다해 모시고 삿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던 사무라이에게 잇쇼켄메이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도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사무라이들이 주군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였다.

일본인들이 역사적 영웅으로 떠받드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도 배신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수하에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지금의 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에 있는 혼노지에서 가신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 자신의 주군을 사무라이가 반란을 일으켜 죽게 만든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는 더 참혹했다. 도요토미가 3세 때 낳은 아들이 죽은 후 오랫동안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할수없이 조카 히데쓰구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했다. 비극은 도요토미가 57세에 아들을 낳으면서 벌어졌다. 친아들이 생기자 도요토미의 마음이 바뀐 것이다.

도요토미는 친아들에게 대를 잇게 하고 싶어 야비한 방법을 쓴다. 조카 히데쓰구가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을 퍼트린 후 그를 고야의 절에 유폐시키고 자결하게 했다. 심지어 반란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는 이유로 그 일가도 몰살시켰다.

하지만 배신의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음을 앞둔 어느 날 자신의 아들(히데요리)의 장래가 걱정됐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다이묘(大名) 4명을 불러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각서를 쓰게 했다. 이른바 후견인이 돼 주길 청한 것이다.

네 명의 다이묘 중 한 명이 이후 전국을 제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는데 각서를 쓸 무렵에는 누구보다 충직하게 소군주를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일왕(천황)으로부터 쇼군 치호를 받은 후 서약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히데요리가 성인이 돼 권력을 이양할 시기 이에야스는 ‘히데요리가 반란을 준비한다’는 누명을 씌웠다.

도요토미가 자신의 조카인 히데쓰구에게 했던 방법을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었다. 이에야스가 히데요리를 제거하려 할 때의 수법도 야비하기 그지없다. 이에야스가 히데요리를 제거하려 오사카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당시 오사카성은 깊은 해자와 돌로 된 견고한 건축물이어서 도저히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게다가 성안에는 수천명의 사무라이가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에야스는 여자 사무라이를 히데요리의 어머니 요도도노에게 보냈다. “히데요리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살려두겠다”고 했다. 아들의 목숨이 우선인 요도도노는 밀약대로 오사카 전투에서 총대장인 히데요리가 전투의 선봉에 서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밀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해자를 메꾼 이에야스는 총공격을 감행했고 성안의 모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결국 히데요리는 어머니 요도도노와 함께 자결했다.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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