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프로 리그가 흔들리고 있다. 한때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네이마르, 카림 벤제마를 연달아 영입하며 “세계 축구의 판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던 리그는 이제 슈퍼스타 이탈, 투자 축소, 임금 체불 논란까지 겹치며 불안정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 사우디 프로 리그의 관중석 풍경. 일부 빅클럽 경기를 제외하면 빈 좌석이 두드러진다. 스타 영입에도 불구하고 현장 흥행이 구조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상징한다.
문제는 단순한 흥행 부진이 아니다. 지금 사우디 리그가 맞닥뜨린 위기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 방식과 리그를 설계한 구조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데 있다.
사우디 리그의 급성장은 국가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사우디 국부펀드인 Public Investment Fund는 알 힐랄, 알 나스르, 알 이티하드, 알 아흘리 등 이른바 ‘빅4’ 클럽을 사실상 소유하며 리그를 밀어 올렸다.
2023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사우디 리그의 지출은 프리미어리그 다음으로 세계 2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폭발적 투자는 철저히 ‘확장 국면’의 논리였다. 스타를 데려와 단기간에 세계의 시선을 끌고, 사우디라는 국가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우디 정부와 PIF는 스포츠 전반에서 “무조건 쓰는 단계는 지났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골프 산업에서 LIV Golf가 향후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는 구조임을 공식 인정한 것처럼, 사우디 내부에서도 스포츠 투자에 대해 수익성과 지속성을 점검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사우디 리그에도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번 만큼만 쓰도록 유도하는 재정 개선 프로젝트, 사실상의 FFP 도입 논의, 빅4 클럽의 민영화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과거와 같은 무제한 투자 환경은 사라지고 있다.
투자 논리가 바뀌자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슈퍼스타 모델’이었다. 사우디 리그의 흥행과 신뢰는 스타 선수 개인의 상징성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그런데 이 스타들이 불만을 표출하거나 리그를 떠나는 순간,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리그 전체의 신용 위기로 번진다.
▲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역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림 벤제마다. 알 이티하드에서 활약하던 그는 재계약 조건과 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사실상 보이콧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고, 결국 알 힐랄로 이적했다. “사우디 리그에서도 스타가 오래 버티지 않는다”는 인식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굳어졌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역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알 나스르보다 알 힐랄에만 투자가 집중된다는 점, 리그 운영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고, 경기 불참 논란까지 불거졌다. 네이마르, 조던 헨더슨, 오바메양 등 사우디로 향했던 다른 스타들 역시 잇따라 리그를 떠났다. 이 흐름은 사우디 리그를 ‘커리어의 마지막 종착지’가 아닌 ‘잠깐 들러 돈을 버는 경유지’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재정 구조의 취약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우디 리그는 겉으로 보기엔 막대한 자본을 굴리는 리그지만, 실제 수익 구조는 매우 빈약하다. 리그 전체 중계권 수익은 프리미어리그 최하위 팀 하나가 받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계권 계약은 늘고 있지만, 스타 선수들의 고액 연봉과 이적료를 자생적으로 감당하기에는 절대 규모가 작다. 결국 투자 속도가 늦춰지는 순간, 클럽들은 즉각적인 현금 흐름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그 결과가 임금 체불과 계약 분쟁이다. 일부 클럽에서는 수개월간 선수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고, 이적료 잔금 미지급 문제로 FIFA 제재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이런 소식은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사우디 리그는 안전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낳는다. 선수와 에이전트,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가 흔들리면, 이후 영입에는 더 많은 돈을 얹어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운영 구조의 문제도 크다. 사우디 리그의 많은 구단은 왕족이 구단주인 형태로 운영된다. 이는 결단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인내심이 극도로 짧은 리스크를 내포한다. 몇 경기만 부진해도 감독 경질설이 돌고, 장기 프로젝트보다는 당장의 우승과 성과가 우선된다. 유소년 육성, 지역 팬덤 구축, 리그 스토리텔링 같은 장기 자산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그 결과 관중 수는 기대만큼 늘지 않았고, 빅4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는 텅 빈 관중석이 일상이 됐다.
▲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사우디의 기후 환경. 여름철 경기 관람 자체가 부담이 되는 조건은 리그 흥행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문화적·환경적 장벽도 글로벌 확장을 가로막는다. 여성 인권 문제, 복장 규제, 극심한 더위는 선수 가족과 팬 모두에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름철 40도를 넘나드는 기후 속에서 “굳이 경기장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현실에서, 현장 흥행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유럽 빅리그와 겹치는 중계 시간대는 글로벌 팬 유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사우디가 축구 투자를 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스포츠는 여전히 ‘비전 2030’의 핵심 축이고, 2034년 월드컵 개최는 이미 확정된 국가 프로젝트다. 다만 지금의 흔들림은 분명한 신호다. 스타를 앞세운 쇼윈도 전략에서 벗어나, 리그를 하나의 산업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경고다.
사우디 리그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무한한 자본으로 주목을 끄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앞으로의 관건은 팬덤, 수익 구조, 유스 시스템, 공정한 거버넌스라는 기본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돈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그 돈이 더 이상 모든 문제를 덮어주지는 않는다. 지금 사우디 리그의 흔들림은 실패라기보다, 진짜 시험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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