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진화생물학과 사회학으로 본 한국 사회의 특이한 멸종 경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낮은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몇 세대 후에는 인구 붕괴를 거쳐 국가 소멸 단계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 역사에서 집단의 소멸은 대개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다른 종족의 침입, 전쟁, 기근, 전염병, 기후 변화 같은 자연·환경적 충격이 집단을 무너뜨려 왔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진행 중인 인구 감소 양상은 인류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형태다.
특이하게도 한국은 지금 '아파트'라는 인공적 주거 구조 때문에 스스로 번식을 중단하는 최초의 사회가 될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전쟁으로 인한 총칼도, 극심한 기근도, 기후 재난도 아닌, 특정한 건축 유형으로서의 아파트가 인간의 번식 본능을 억제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파트라는 물리적 구조와 그 안에 내포된 사회·문화적 구조가 결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최악의 경우 한국은 실제로 '국가 소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 현상은 그저 부동산 가격 문제나 정책 실패의 차원을 넘어, 진화생물학적 본능 구조와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충돌로 읽어야 한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체의 최우선 목표는 단 하나, 유전자 전달과 번식이다. 번식은 도덕이나 윤리 이전의 문제이며, 생존과 직결된 본능적 과제다. 환경이 번식에 적합할 때 종은 자연스럽게 개체 수를 늘린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번식이 활발했던 조건은 의외로 단순했다.
첫째, 안정적인 거주 공간이 필요하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손을 보호하고, 자녀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물리적 보금자리가 전제 조건이다.
둘째, 자손을 키울 수 있을 만큼의 물리적 여유, 즉 식량과 공간, 시간 자원이 확보돼야 한다.
셋째, 공동체의 지지와 소속감이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담을 가족·친족·마을이 일정 부분 나누는 사회일수록 번식률이 높았다.
넷째,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이 환경에서 나와 자녀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번식이 촉진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요소가 충족되면 인간은 '의지'를 짜내지 않아도 아이를 많이 낳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이 번식을 '의지력으로 결심'해서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번식은 언제나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행동이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은 환경이 안전하면 번식하고, 환경이 불안하면 번식을 멈춘다. 특히 인간에게 환경은 두 층위로 작용한다. 하나는 실제 물리적 환경(주거, 먹고 사는 여건)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문화적 환경(규범, 경쟁, 비교 구조)이다.
현재 한국의 아파트 환경에서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그리고 매우 강력하게 '지금은 번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특히 사회·문화적 환경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아파트는 왜 진화적으로 '번식 억제 구조'가 됐는가
한국의 주거 시스템, 그중에서도 아파트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건축 구조적 특징뿐 아니라, 개인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을 보면 그 특수성이 더 분명해진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파트는 거주하는 목적의 집만이 아니다. 아파트는 금융 자산이며, 신분증명서이며, 결국 생존 경쟁의 핵심 도구가 됐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아파트는 인간에게 대략 이런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지금은 안전하지 않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번식보다 생존 경쟁이 우선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신호다. 동물 실험에서도 서식지가 과밀해지고 경쟁 압력이 높아질수록 번식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한국의 아파트 구조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번식 억제적이다.
우선 아파트는 과도하게 밀집돼있다. 단위 면적당 거주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수직적 집합 구조다. 그다음에 사적 공간은 최소화돼 있고, 이웃과의 관계는 물리적으로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단절돼있다. 또한, 일반적인 주거 환경의 중요한 요소인 자연과의 접촉이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창을 열어도 보이는 것은 건물과 도로, 주차장인 경우가 많다.
이런 조건 속에서 아파트는 '아이를 낳아도 되는 장소'라기보다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민폐가 되는 장소'로 인식되기 쉽다. 층간 소음, 유모차와 아이 울음소리에 대한 민원, 공동 육아 인프라의 부재 등이 결합하면서, 인간의 뇌는 이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번식 금지 구역'으로 해석한다.
진화생물학에는 '밀도 의존적 선택'이라는 개념이 있다. 개체군 밀도가 한계치에 다다르면, 생물은 생존을 우선해 번식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는 쪽으로 진화한다. 한국의 아파트는 바로 이런 밀도 의존적 억제 메커니즘이 작동하기에 충분한 환경이다. 고밀도·고경쟁 환경은 인간의 뇌에 '자원이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신호를 상시로 보낸다.
게다가 아파트라는 폐쇄적 공간에서는 옆집, 윗집, 같은 단지 거주자와의 끊임없는 비교가 발생한다. 브랜드, 평형, 인테리어, 교육 환경, 차종, 커뮤니티 시설 이용 등이 눈에 띄게 서열화되어 있다. 이는 일종의 '서열 확인'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유발한다.
진화론적으로 서열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하위 개체가 번식을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보고돼 왔다.
결국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둥지'를 확보하지 못한 개인은 스스로를 '번식 부적격 상태'로 규정하기 쉽다. '아파트도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나'는 문장은 문화적 상징이자 진화생물학적 반응이다. 번식 본능이 억제되고, '언젠가 더 안전해지면'이라는 조건부 미래에 출산이 무기한 미뤄진다.
그러나 그 미래는 대부분 도달하지 못한 채, 생식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가 버린다. 이것이 한국형 아파트 사회가 만들어낸 특이한 멸종 경로의 핵심 구조다. (2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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