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꼬리표를 떼고 결제와 송금, 자산 운용의 판을 흔드는 '금융 혈관'으로 자리잡았다. 한국도 제도권 편입을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관리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은 여전히 희미하다. 여성경제신문 연중기획 [원화S코인]은 지각 변동과도 같은 금융 인프라의 전환기를 맞아 스테이블코인의 흐름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1부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물 경제와 산업 전반에 가져올 변화를 추적하고 제도적 빈틈을 메우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2부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전문가 진단을 통해 실제 도입 단계에서 마주할 쟁점들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본 기획이 한국형 디지털 통화 체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넘어야 할 산
금융 및 자본시장은 이미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논의의 초점도 한 단계 앞으로 이동했다. 은행과 비은행이 정산 레일을 놓고 충돌했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그 레일 위를 실제로 달릴 수 있느냐다. 레일 위를 문제없이 달릴 수 있도록 받쳐줄 제도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제도 논의는 난항에 부딪혔다. 제도 입법을 막는 5가지 장벽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바로 △발행 주체를 둘러싼 법적 공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의 역할 충돌 △외산 코인과의 유통 경쟁 △실물 자산 시장과의 결합 △블록체인 간 상호운용성 확보다.
첫 번째 벽 — 디지털 원화의 주인은 누구?
'발행 주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이용자들이 발행사가 실물 자산(담보)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 당연히 발행사가 누구냐에 따라 이런 투명성의 정도와 확보 방법은 달라진다.
본디 예금을 토대로 한 토큰 발행은 사실상 은행만 가능하다. 하지만 자산 담보형 구조라면 비은행에도 문이 열리게 된다. 비은행에 발행권이 열리게 될 경우 금융 안전성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다. 예금자 보호 장치 없이 토큰이 확산하면서 시스템 위험이 커지게 된다.
금융위원회도 이를 알고 준비금 적립과 자기자본 요건으로 진입 장벽을 세우려 한다. 하지만 빅테크와 거래소가 이를 기존 금융 보호 장치로 해석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기업들은 플랫폼이 발행에서 배제될 경우 시장이 은행 중심 구조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기업이 은행 중심 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발행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금융 질서가 재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및 금융 안정 훼손을 이유로 은행 중심 모델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은행 중심 구조 아래에선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지고 결국 기회를 얻을 가능성조차 제한된다는 의견이 대세다.
결국 디지털 원화를 누가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권력 분배 문제인 셈이다. 이에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성 문제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안전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발행권이 정해진 후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미진해진 것이다.
해당 논의가 심화하면서 입법에도 제동이 걸린 상태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2단계 입법안이 발행 주체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도 이런 갈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 이전 현행 법체계상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자체에 대한 명시적 허용 규정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꼽는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스테이블코인을 가상자산의 한 유형으로 포섭하고 있으나 정부의 가상화폐 공개(ICO) 금지 기조가 유지되는 한 국내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행위는 정책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상태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업권 갈등을 넘어 제도 공백 상태에서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되는 이유다.
두 번째 벽 — 불확실요소 CBDC
CBDC 도입 역시 향후 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주요 변수 중 하나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로 은행 예금이나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중앙은행이 그 가치를 직접 보장한다. 이런 특성상 통화 가치의 안정성은 보장하지만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요구하는 기술적 유연성과 속도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안정성을 우선하면서 민간 혁신과 자연스레 충돌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한강'은 기관용 CBDC를 기반으로 그 위에 은행 예금 토큰이 유통되는 2층 구조를 상정한다. 설계만 보면 스테이블코인과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위한 기술적 발전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이나 조건부 자동 정산 같은 구조는 중앙은행 체계 안에서 구현되기 쉽지 않다. 결제·동선의 획기적인 단축과 이로 인한 환경의 변화가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한국은행과 민간 블록체인 간 인터페이스 표준은 아직 정립되지 않아 기술적 연결 고리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CBDC 도입 여부 및 일정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제도의 방향성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직 CBDC 도입을 확신할 순 없다. CBDC 출시를 위한 준비에는 일반적으로 수년이 소요된다. 현재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법·제도적 승인과 상용화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
CBDC와의 관계 역시 법적·제도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통화 안정성을 전제로 설계되는 만큼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지향하는 수익형 구조나 자동화된 조건부 정산 모델과는 충돌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법조계에서는 한국은행법 등 관련 법령상 CBDC와 민간 디지털 화폐의 역할 구분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 역시 방향성을 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 번째 벽 — 달러 코인과의 경쟁, 열쇠는 '신뢰'
글로벌 시장에서 외산 코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안정성 확보가 필수다. 글로벌 표준에 걸맞은 철저한 자산 검증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이용자들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원화 코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달러 기반 코인은 국제 거래의 기본 통화라는 점에서 원화와 다른 위상을 갖는다. 이는 높은 유동성으로 이어지고 금융 시장에서 유동성이 신뢰의 지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달러 기반 코인은 경쟁력을 갖는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이미 테더와 USDC 등 글로벌 표준 코인이 자리 잡았다. 정부가 외산 코인에 규제를 가할 경우 거래 가능 범위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부담이 있고 반대로 규제를 완화하면 국내 시장 주도권을 외산 코인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규제와 방치 사이에서 국산 스테이블코인의 생존 전략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딜레마에 놓였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스테이블코인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결국 자산의 투명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안정성 문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단순히 원화 예금을 묶어두는 구조만으론 달러 코인의 네트워크 효과를 따라잡기 어렵다.
달러 기반 코인은 자산 내역을 자체적으로 공개하고 미국 국채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신뢰를 쌓아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안정적인 담보와 신뢰를 보여주느냐'에 대한 답을 제도를 통해 내놓아야 한다.
외산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과 관련해서도 명확한 법적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현행법 체계상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지위와 규율 방식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외국환거래법 등 여러 법령이 교차하는 영역에 놓여 있다.
정부는 2단계 입법 과정에서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본국 인가를 전제로 국내 유통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규율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규제를 강화하면 국제 경쟁력이 약화하고 반대로 규제를 완화할 경우 시장 주도권을 외산 코인에 내줄 수 있다는 딜레마가 이어지고 있다.
네 번째 벽 — 실물 경제 연결을 위한 '법적 완결성'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실물 자산 토큰화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부동산과 금, 채권 같은 자산이 토큰 증권으로 거래될 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정산 통화로 작동한다면 비용과 시간이 동시에 줄어들게 된다.
증권사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토큰 증권을 거래하더라도 최종 정산은 기존 은행 시스템을 거쳐야 해 실시간 배당이나 자동 정산에는 한계가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정산 수단으로 활용되면 이런 제약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문제는 관련 법적 기반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국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의 명확한 법적 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디지털 화폐가 실제로 어떻게 지급결제 인프라에 편입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다.
스테이블코인이 정산 수단으로 인정받으려면 1대 1 가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래 이후 사고가 생겼을 때 책임 주체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1대 1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코인을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 구매에 쓰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유자가 언제든지 1원을 1원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 공식 경로가 마련돼야 정산 수단으로서의 스테이블코인 활용도 가능하다.
법적 완결성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의 실물 경제 연결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부동산이나 증권 등 실물 자산 거래의 정산 수단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지급결제 수단으로서의 법적 지위와 1대1 상환 구조,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로서는 전자금융거래법, 자본시장법 등 개별 법령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실제 상용화 단계로 나아가는 데 제약이 크다는 평가다.
다섯 번째 벽 — 기술 표준은 전제조건
스테이블코인에서 상호운용성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조건에 가깝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코인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면 빠르고 편리하다는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이 크게 약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해 코인을 옮길 수 있게 하는 '브릿지' 기술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브릿지 과정에서 코인을 잠그거나 대신 발행하는 구조 특성상 해킹 사고가 반복돼 신뢰가 흔들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별 기술에 의존하기보다 공통의 기술 표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준 없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연결 구조를 만들 경우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다.
기술 표준이 없는 상태에서 코인이 이동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가격 변동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가치가 안정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술 표준 마련은 생존과 직결된 과제로 꼽힌다.
여기에 개인정보 보호와 트래블룰 준수라는 과제도 남아 있다. 거래 투명성을 중시하는 블록체인 구조와 개인정보 보호가 필요한 금융 규제를 동시에 충족하려면 영지식 증명과 같은 고급 암호 기술의 활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 표준과 관련해서도 현행 제도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 안정성과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블록체인 간 상호운용성이나 공통 기술 표준을 직접 규율하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기술 표준은 민간 영역에 맡겨진 상태지만 사고 발생 시 책임은 제도적으로 부과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가치가 안정성인 만큼, 기술 표준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가 향후 입법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입법 지형 — 정부·여당 2단계와 의원안 병존
현재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 논의는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과 국회에 발의된 개별 의원안이 병존하는 구조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발행·유통·감독을 포괄하는 통합적 디지털자산 제도 틀을 구상 중이지만 구체적인 발행 인가 방식과 준비자산 규율, 감독 범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김은혜 의원안 △안도걸 의원안 △민병덕 의원안이 각각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김은혜 의원안은 가치 고정형 디지털자산 발행을 금융위원회 인가 대상으로 규정하며 비교적 단순한 인가·공시 체계를 전제로 한다.
안도걸 의원안은 인가 이전에 예비인가 절차를 두고 준비자산 100% 분리보관과 공시·검증 의무를 강화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민병덕 의원안은 자산 연동형 디지털자산 전반을 포괄하는 인가 체계를 명시하고 발행·공시·거래 지원 전 과정의 투명성을 법제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발행 주체 범위와 인가 방식, 준비자산 관리 수준, 감독과 제재 체계까지 법안마다 설계 온도차가 존재하는 만큼 단일한 제도 틀로 수렴되기까지는 상당한 조율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멈춰 선 배경에는 풀리지 않은 쟁점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발행 주체를 둘러싼 △권한 배분 문제부터 △CBDC와의 역할 정립 △외산 코인과의 경쟁 구도 △실물 자산과 연결되기 위한 법적 기반 △블록체인 간 상호운용성을 뒷받침할 기술 표준까지 어느 하나도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과제들이다.
이들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제도만 앞서 나갈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시장에서도 실물 경제에서도 활용 범위를 넓히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정체는 속도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 발행·통화·결제·자산·기술을 각각 다른 법체계가 나눠 규율해 온 구조적 충돌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도화 논의가 더딘 지금의 국면은 속도를 내기보다 무엇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단계에 가깝다는 평가다.
☞가상화폐 공개(ICO) = 암호화폐(코인) 사업자가 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후 해당 코인이 거래소에 상장하면 투자자들은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나 그만큼 투자 위험도 크며 전 세계적으로 사기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2017년 ICO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트래블룰(Travel Rule) = 자금세탁방지(AML) 규제 중 하나로 가상자산 이전 시 송금인과 수취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영지식 증명 =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도 어떤 사실이 참임을 상대에게 증명하는 암호학 프로토콜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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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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