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는 단순한 공간 이동을 넘어 공적 공간의 긴장 고조와 정치적 표현의 확산, 인근 주민과 노동자들의 삶까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 기획은 청와대 재이전을 둘러싼 여러 진통을 짚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시행착오와 남은 과제를 들여다본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도심 곳곳에 걸린 과격한 정치 현수막을 둘러싸고 규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특히 청와대 일대는 권력의 상징 공간이자 정권 교체의 기억이 응축된 장소라는 점에서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민감도가 유독 높을 수밖에 없다.
한때 여당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규제 완화를 주도했지만 정권 교체 이후에는 도시 미관과 갈등 조장을 앞세워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려는 분위기다. 같은 공공 공간, 같은 정치적 표현임에도 정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 셈이다. 청와대 개방을 둘러싼 노동 공백 논란과 맞물려 국가가 공적 공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누구의 권리를 우선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도심 곳곳에 걸린 과격한 정치 현수막을 둘러싸고 규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지만 지난달 28일 찾은 청와대 인근 풍경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지하철역 주변에 일부 정당 포스터가 눈에 띄었을 뿐 청와대 경내와 주변 도로에서는 정당 명의의 정치 현수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눈에 띈 것은 인근 농성장에서 게시한 현수막 3~5개가 전부였다.
청와대 앞과 주변 인도 곳곳에는 1인 시위자와 소규모 시위팀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었다. 손팻말을 들고 선 이들은 많아야 10팀을 넘지 않는 규모였다. 확성기나 대형 구조물은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거나 시선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는 왜곡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의 현수막이나 문구는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은 시위의 ‘소음’이나 ‘과격성’이 아니라 공간을 둘러싼 관리의 밀도였다. 청와대 인근에는 경찰 인력이 상시 배치돼 있었고 주요 동선과 농성장 주변에는 안내 문구가 반복적으로 게시돼 있었다. 종로경찰서 명의의 안내문에는 “종로구청의 행정 응원 요청에 따라 천막 등 불법 적치물 설치 시 관계 법령에 의거해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안내문은 금지 물품의 범위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신고되지 않은 집회 물품, 천막 등 장기간 유숙이 가능한 물품, 향후 천막 형태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물품 등이 그 대상이다. 정치적 표현의 내용보다는 설치 방식과 체류 가능성, 공간 점유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관리 기준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청와대는 개방이라는 성과와 함께, 공적 공간의 정치적 표현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현수막 관련 법은 ‘정권’에 따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혐오적 정치 현수막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8일 경찰이 혐오현수막을 게재한 혐의로 ‘내일로미래로당’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사실을 언급하며 행정당국과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주 선임부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유괴·납치·장기적출 등 혐오적 표현과 ‘혐중’ 구호가 담긴 현수막이 전국에 게시됐다”며 “부정선거 주장을 부추기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범죄 행위를 두둔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부와 행정당국의 판단도 근거로 들었다. 김 선임부대변인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1심 판결을 언급하며 “사법부가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부정선거 주장을 질타한 바 있다”고 했으며 행정안전부 역시 지난해 11월 혐오현수막이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고 미풍양속과 청소년 보호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철거·폐기 지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회에서도 여당 주도로 정치 현수막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당 현수막 규제를 되살리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을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던 현행 조항을 삭제하고 국적·종교·지역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를 조장·선동하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정당 현수막은 다시 규제 대상이 된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 현수막을 둘러싼 기준이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정당 현수막 규제를 완화했지만 정권 교체 3년 만에 다시 규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경계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문제는 그 판단과 집행의 기준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다.
더욱이 국민의힘을 비롯해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역시 정당 활동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행정안전위원회 야당 간사인 서범수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행안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옥외광고물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을 때 만든 법”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이 만들고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때는 정치 표현의 자유와 정당 활동 보장이라더니 지금은 혐오 표현과 경관 훼손인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개방 이후 이 일대가 ‘국민의 공간’이자 정치적 의사 표현이 응축되는 장소로 떠오른 점도 이러한 논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법은 시행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일정한 ‘보이지 않는 규제’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표현의 자유일까, 시민 불편 대응일까
이처럼 현수막을 통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시민의 일상을 침해하는 순간은 어디부터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청와대 일대를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무엇을 혐오·비방 표현으로 규정할 것인지를 두고는 표현의 자유 보호와 시민 불편 해소 사이에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명확한 법적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규제 판단이 지자체 재량에 맡겨지다 보니 혼선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 당국은 공공 공간의 질서와 시민 불편을 이유로 일정 수준의 관리·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현수막 정비 실적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 배경에는 12·3 비상계엄 이후 격화된 정치·사회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 한 달 동안 서울의 정비 대상 현수막은 1971건으로, 전달인 11월(1124건)보다 75.4% 급증했다. 정치적 메시지가 공공 공간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시민 불편 민원이 잇따랐고 이에 이 대통령도 국무회의와 업무보고 등을 통해 관계 부처에 대응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실제로 청와대 인근에 거주하는 A씨는 “하루에도 길을 걷다 보면 정당 현수막이나 천막에 몇 번씩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데, 그 자체가 상당히 피로하게 느껴진다”며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일상적인 생활 공간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은데 보기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후 제도적 정비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 적용 가이드라인’을 시행해 정당 현수막을 포함한 혐오·비방성 현수막에 대한 규제 기준을 내놨다. 가이드라인은 광고물 내용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민주주의를 왜곡·부정하거나 △사회적 통합을 저해해 피해 당사자 또는 다수의 민원이 제기될 시 금지광고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역시 해석과 적용의 여지가 넓어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개방 이후 정치적 상징성이 더욱 커진 이 일대에서도 표현의 내용보다는 설치 방식과 공간 점유 여부를 중심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공공 공간을 둘러싼 자유와 규제의 경계가 보다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는 한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공적 공간을 둘러싼 논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수막도 못 거는데…집회까지 금지한 청와대
청와대 주변 공공 공간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둘러싼 규제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현수막 정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집회, 시위마저 제한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인근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안이 진보 4당과 시민사회의 반발 속에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이 재석 의원 197명 가운데 찬성 119명으로 가결됐다. 반대와 기권은 각각 39표였다.
이번 개정안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4건의 법안을 병합·조정해 마련됐다. 지난해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22년 12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한 현행 집시법 제11조 제3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집회 금지 구역이 과도하게 넓어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입법 보완은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조항은 2024년 6월 효력을 상실했다.
이번에 여야 합의로 처리된 개정안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새롭게 포함했다. 다만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인근의 경우라도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없거나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예외적으로 집회·시위를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진보 야권과 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집회 장소 선택의 자유가 집회의 자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경찰의 사전 판단에 따라 집회 허용 여부가 좌우될 수 있는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지적이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처리 과정에서 여야의 강행 논란이 불거진 만큼 향후 위헌성 논쟁은 물론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