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경쟁 판도가 바뀌고 있다. 연산 성능을 끌어올리는 GPU와 메모리의 진화가 정점으로 향하는 사이 시장의 관심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느냐’로 이동했다. 그 중심에 냉난방공조(HVAC)가 있다.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의 30~40%가 냉각에 쓰인다는 점을 들어 “데이터센터의 절반은 공조”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북미 시장을 기점으로 HVAC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두 회사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AHR EXPO 2026에 나란히 참가해 주거·상업용을 넘어 산업용, AI 데이터센터용 공조 솔루션을 전면에 배치했다. 전시의 초점은 신제품 스펙보다 에너지 효율, 운영 안정성, AI 기반 제어였다.
◆ AI 서버가 빨라질수록 ‘냉각’이 병목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연산 과정에서 막대한 열을 발생시킨다. 냉각 실패는 즉각적인 성능 저하와 장애로 이어진다. 냉각 효율이 1%만 개선돼도 연간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전력 비용을 줄일 수 있다. HVAC는 더 이상 부대 설비가 아니다. 가동률(uptime)과 운영비(OPEX)를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격상됐다.
삼성전자는 대형 프로젝트와 시스템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북미 주거 환경에 맞춘 유니터리 제품과 히트펌프, 대용량 시스템에어컨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에 AI 제어를 결합해 설계–납품–운영을 묶는 패키지형 수주를 강화하고 있다. 인버터 기술을 적용한 실외기와 다양한 기후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난방 성능을 구현하는 제품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의 공조 전략은 ‘제품’보다 엔지니어링과 시스템 통합 역량이 중심이다.
LG전자는 운영 효율에 초점을 맞췄다. 북미 시장에서 강점을 지닌 유니터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고발열 서버 환경을 겨냥한 고효율 냉각 솔루션과 액체 냉각 기술을 선보였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안정적인 냉각을 구현해 데이터센터 운영자의 전기요금과 유지비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을 둔다. 조직 개편을 통해 HVAC를 독립 사업으로 분리한 배경 역시 수주·운영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 정책·데이터가 키우는 ‘AI 공조’
북미의 전기화 정책과 에너지 효율 규제는 공조 시장 성장을 가속화한다. 히트펌프와 고효율 공조는 보조금·세액공제와 맞물린 정책 수혜 장비로 부상했다. 여기에 AI 기반 제어가 더해진다. 온도·전력·서버 부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예측 유지보수와 자동 최적화를 수행한다. AI 서버를 식히는 HVAC 역시 AI가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경쟁의 다음 병목은 냉각”이라며 “공조는 설비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수익성을 결정하는 인프라”라고 말했다. GPU와 메모리가 연산을 책임진다면 HVAC는 AI 서비스를 멈추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다. 가전의 연장선이 아니라 AI 공조 전쟁으로 재편되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HVAC 시장은 친환경·고효율 건물 수요와 AI 데이터센터 증설이 맞물리며 중장기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HVAC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3016억달러(약 415조원)에서 2034년 5454억달러(약 75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6% 안팎으로 전통적인 가전·건설 연계 산업을 넘어 인프라 산업으로의 확장이 뚜렷하다는 평가다.
삼성과 LG가 노리는 시장은 공조 장비 판매 그 자체가 아니다. AI 인프라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동률과 효율’의 영역이다. 즉 데이터센터 경쟁력에서 냉각을 위한 고효율 공조기술은 핵심 승부처가 되고 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