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형이 사라진다?···천정부지 반도체 값에 가전 출혈경쟁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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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이 사라진다?···천정부지 반도체 값에 가전 출혈경쟁 안갯속

이뉴스투데이 2026-02-05 15:25: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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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나란히 급등하며 강한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 [사진=연합뉴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나란히 급등하며 강한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이 촉발한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 스마트폰·PC·TV·생활가전까지 밀어 올리며 전자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에 생산 역량이 쏠리면서 범용 메모리는 품귀 국면에 들어섰고, 완제품 업체들은 가격 인상과 수익성 악화 사이에서 출혈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보급형 제품이 먼저 줄어들고 프리미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서버 업체들은 확보한 메모리를 곧바로 서버 조립과 출하에 투입하는 구조여서 재고 수준이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미와 중국의 클라우드서비스기업(CSP), 서버 완제품 제조사(OEM)들은 장기공급계약(LTA)을 놓고 메모리 업체들과 협상을 이어가며 물량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서버용 D램에 생산 역량을 우선 배분하면서 낸드와 범용 제품의 공급 여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빅3’는 최근 고객 주문 검증을 강화하며 과도한 선주문과 사재기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는 “생산과 동시에 판매가 이뤄지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고, 업계에선 글로벌 빅테크 구매 담당자들이 평택·판교 일대에 상주하며 물량 확보에 나선다는 말까지 나온다. 판매자 우위가 굳어지며 가격 결정권이 메모리 업체로 급격히 이동한 셈이다.

가격 상승 속도도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1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최대 90% 이상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서버용 D램과 스마트폰·노트북에 쓰이는 LPDDR 계열 역시 비슷한 수준의 인상이 예고됐고, 기업용 SSD 가격도 50% 안팎 상승이 전망된다. 전 제품군에서 동시다발적 가격 급등이 나타나는 이례적 국면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충격은 이미 실물 가격으로 번지고 있다. 노트북과 PC,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TV·셋톱박스·공유기·저가 태블릿 등 보급형 제품군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부 노트북 제품은 출시가 대비 20~30%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고, 그래픽카드와 SSD, PC용 메모리 가격도 단기간에 두 자릿수 이상 뛰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메모리를 빨아들이면서 일반 소비자용 하드웨어는 공급망의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이 단기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메모리는 공정 미세화를 통한 점진적 증산 외에는 단기간 대규모 증설이 쉽지 않다 분위기다. 메모리 업체들이 고부가 서버용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는 흐름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PC 출하 전망치는 추가 하향 조정됐고, 스마트폰 역시 올해 최대 5%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이미 구조 변화가 감지된다. 중국 중저가 제조사들은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신제품 출시를 취소하거나 보급형 SKU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부 브랜드는 기존 8GB 모델을 단종하고 고용량 모델만 남기면서 가격을 한꺼번에 올렸다. 중저가 스마트폰에서 메모리가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비용 전가가 어려운 업체부터 포트폴리오 축소에 나서는 모습이다.

대형 제조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는 보급형 스마트폰 원가를 방어하기 위해 중국산 OLED 패널을 처음 채택하고, 일부 모델에는 2년 전 구형 칩셋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부품 다변화에 나섰다. 퀄컴 대신 미디어텍과 자체 AP 비중을 늘려 칩 비용을 최대 30%까지 낮추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이 평균판매단가(ASP)를 10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수익성을 강화했지만, 삼성은 보급형 판매 비중 확대로 ASP가 오히려 하락하는 양상이다. 이 격차는 갤럭시 S26 가격 전략을 둘러싼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품 원가 상승을 고려하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시각과, 프리미엄 시장을 애플에 내줄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결에 가까운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엇갈린다.

여기에 미국의 AI 반도체 관세 리스크까지 더해졌다. 미국은 중국 재수출용 AI 칩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파생 제품까지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CPU·GPU·메모리 모듈을 넘어 스마트폰과 가전 같은 완제품으로 번질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제조사가 비용을 떠안으면 수익성이 악화되고,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수요 위축이 불가피한 구조다.

결국 제조사들의 선택지는 뚜렷해지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모델에 역량을 집중하거나, 보급형 라인업을 축소해 원가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저가 SKU 출하량 감소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AI 메모리 블랙홀이 만들어낸 가격 왜곡이 전자산업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신호라는 해석이다.

왕양 카운터포인트 애널리스트는 “비용 전가가 어려우면 제조사들은 제품 포트폴리오 일부를 정리하기 시작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저가 SKU의 출하량이 크게 줄어드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언 레이스 IDC 부사장도 “부품 가격과 공급망 비용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재편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서버용 메모리와 AI 관련 물량이 우선 배정되다 보니, TV·스마트폰 같은 범용 제품은 조달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가격을 올리기도, 원가를 더 줄이기도 한계에 와 있어 보급형 라인업을 줄이거나 사양 개선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메모리를 흡수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세트 산업 전반에서 보급형 축소와 프리미엄 집중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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