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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8월부터 EU 내에서 포장 및 포장 폐기물에 관한 규정(PPWR)이 본격 시행된다. PPWR의 핵심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포장재 사용을 사실상 퇴출시켜 포장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있다. 이에 따라 EU로 식품을 수출하려는 기업들은 제품의 포장 부피를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재활용이 용이한 단일 소재를 사용하거나 재생 원료 비중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는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가진 강력한 규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즉시 퇴출 조항이다. EU는 포장재 내 유해물질 함유량을 엄격히 제한하는데, 물과 기름에 강해 식품 포장 코팅제로 널리 쓰이는 ‘과불화화합물(PFAS)’이 타깃이다. 규정에 따르면 식품 접촉 포장재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PFAS가 검출될 경우 시장 출시가 전면 금지된다. 라면 스프의 내유(기름 방지) 코팅이나 컵라면 용기, 즉석조리 식품 포장재 등이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
2030년엔 더 높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EU는 2030년 1월 1일부터 모든 포장재에 대해 ‘재활용 성능 등급(A~D)’ 평가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평가에서 최하위인 D등급을 받거나,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로 판명되면 시장 출시가 금지된다. 또한, 플라스틱 포장재는 2030년부터 30~35%, 2040년부터는 50~65%의 재생 원료를 의무적으로 섞어 써야 한다. 향후 라면 포장재의 절반 이상을 재활용 소재로 만들지 못하면 수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국내 주요 식품 기업들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 규제에 대비하고 있다. 우선 농심은 올 상반기 중 PPWR에서 요구하는 적합성 선언서(DoC)와 기술문서(TD)를 마련할 계획이다. 유해물질 농도 제한에 대한 우선적 대비와 함께 하위법령에 맞춘 재활용성 및 포장 최소화 대응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삼양식품은 관련 규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내부적인 대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으나, 수출 품목이 규제 대상인 만큼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선 범정부 차원의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태제과는 8월 시행 시점에 맞춰 순차적으로 규격에 맞춰나간다는 계획이다.
국내 식품업계의 대응이 미흡한 셈이다. 가장 큰 원인은 낮은 수출 비중에 따른 비용 딜레마다. 2024년 기준 한국 농식품의 EU 수출액은 약 7억 7300만달러(1조 1300억원)로, 전체 수출액의 7.5%에 불과하다. 미국(17.5%)이나 중국(15.5%)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비중이 한자릿수인 시장을 위해 수십억 원을 들여 포장재 생산 라인을 전면 교체하거나, 값비싼 친환경 소재를 도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비중만 따지다가는 ‘성장 엔진’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 수출 비중은 작지만, 지난해 수출 증가율이 13.6%에 달할 정도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알짜 시장인 데다 EU의 환경 규제가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부교수는 “정부는 시행될 규제를 해당 업체군에 알려주고 대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수출보조금으로 포장재 지원은 금지돼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성장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해야할 때”라고 설명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식품 시장의 3대 키워드 중 하나가 친환경 혁신이다. 우리 기업들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들은 생분해성 소재 개발이나 잉크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패키징 기술 혁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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